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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화성시지부, 경주 ‘문학기행’
동리·목월문학관 관람 및 유적지 돌며 백일장 겸해
 
김종철 기자 기사입력 :  2013/06/11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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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리·목월문학관 마당에서 문학기행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문협 화성시지부(지회장 유지선)가 지난 1일 경주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회원들은 오전 6시 화성문화원에 집결해 관광버스로 옮겨 타고 경주 ‘동리․목월문학관’으로 출발했다.

이번 문학기행은 한국문학에 족적을 남긴 문인들의 발자취를 돌아봄과 동시에 문학적인 감성을 재조명 해보는 기행으로 일정이 짜졌다.
유지선 지회장은 가는 동안 버스 안에서 경주 문학기행의 의미를 밝히고, 오가는 동안 소설가 김동리 선생의 무녀도의 배경이 된 ‘예기소’ 지명을 따 ‘예기소 백일장’을 진행했다.

시 또는 소설부문으로 해 '무녀'를 시제로 출제하고, 기행 중에 글을 써 오후 7시까지 심사위원에게 무기명으로 제출하기로 했다.
화성문화원을 출발한 골든벨투어버스는 화성을 벗어나 경부선에 접어들어 휴게소에 머문 시간을 빼고 약 3시간30분 정도 소요된 11시에 동리․목월문학관에 도착했다.
기념관 마당 안쪽에 시인들의 시화와 어우러진 아사달 아사녀의 사랑을 기념하는 아사달비를 둘러보고 기념촬영을 했다.

정면으로 보이는 문학관 좌측으로 동리기념관, 우측으로 목월기념관을 둘러보고, 아래층에서 김동리(1913~1995) 선생과 박목월(1915~1978) 선생의 성장과정과 활동배경, 한국문학에 끼친 업적에 대한 영상을 시청했다.
맞은편 신라를 빛낸 인물관은 신라의 학자, 국악, 예술 등 각 부문의 위인들의 기록이 현대인의 시각에 맞춰 잘 꾸며져 있다.

첫 기행 관람을 마치고 유지선 지회장과 이상옥 사무국장을 비롯해 회원들(김은희, 김효선, 장영주, 황금모, 박대진, 윤순희, 서석봉, 김종철 외)은 경주 하동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감은사지로 향했다.
통일신라시대 감은사 절터인 감은사지 입구의 수로를 지나 윗쪽으로 녹색 짙은 풀 언덕 위로 거대한 삼층석탑이 동서로 마주보고 서있다.
경사가 급한 나무계단이 발길을 재촉했다. 동탑과 서탑을 돌아 다음 행선지인 해상 문무대왕릉(대왕암)으로 향했다.

   
해상 문무왕릉

 

해상에 위치한 문무왕릉의 신기함과 사람들의 관심에 관광객이 끊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문무왕릉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버스로 10분 거리에 있는 주상절리 바다소리 길에 들어섰다.
오후가 되면서 이동할 때마다 피로가 쌓이며 하나 둘 잠에 떨어지는 가운데 버스는 어느새  금장대 앞에 도착했다.
경부 중앙선 철길 위 다리를 건너 작은 산을 넘으면 2012년 제78차 세계펜대회가 열린 금장대가 나타난다.

경주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금장대는 시를 읊조리던 문학인들의 문학적 배경이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어느새 오후 5시. 야경이 아름다운 경주시내 보기를 다음으로 미루고, 예정됐던 복원 중인 목월선생 생가 방문마저 미루고 버스는 화성으로 향했다.

상행길에 ‘예기소 백일장’에 출품한 회원들의 시 가운데 두 위원의 심사를 거쳐 1, 2, 3등으로 수상작을 뽑았다. 1등에는 황금모, 2등에 김효선, 3등에 김종철 회원이 각각 입상했다.
상·하행길 백일장 전후로 회원들의 인사말과 회원들과의 친목을 위해 시노래가  펼쳐졌다.

이번 문학기행에서 회원간의 친목도모는 물론, 다채로운 문학행사로 문학적 성장을 기대하는 분위기 조성으로 의미가 남다른 문학기행이었다.
<화성문협>

 

   
감은사지에 오르는 계단에서.

<지명설명>

 

*주상절리(柱狀節理)
용암이 분출해 굳게 될 때 바닥의 찬 기운과 만나 굳을 때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 같은 형상이  됐다는데서 이름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문무대왕릉(文武大王陵. 사적 제158호, 대왕암(大王岩)이라고도 함)
문무왕(文武王)은 삼국통일 후에도 불안정한 국가의 안위를 위해 죽어서도 국가를 지킬 뜻을 가졌다. 지의법사(智義法師)에게 자신의 시신(屍身)을 불식(佛式)에 따라 고문(庫門) 밖에서 화장해 유골을 동해에 묻으면 용이 돼 국가를 평안하게 지키도록(護國大龍) 하겠다고 유언했다. 이에 따라 유해를 육지에서 화장해 동해의 대왕암 일대에 뿌리고 대석(大石)에 장례를 치렀다. 사람들은 왕의 유언을 믿어 그 대석을 ‘대왕암’이라고 불렀다.

*예기소
김동리의 소설 ‘무녀도’의 배경. ‘애기소’라 부르기도 함.
소설 속의 모화(무당)가 비명에 간 부잣집 며느리의 혼을 위로하고 예수귀신이 진짜인가, 신령님이 진짜인가를 증명하려 굿을 하다 끝내 물에 빠져 죽었다는 곳.

   
   
동리선생의 방
   
경주를 지나가는 중앙선 기찻길
   
금장대에서 바라본 경주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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