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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 기억나지 않아
윤정화의 심리칼럼(2014.01.07)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15/01/07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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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 집에 없다.
 
남편은 직장에서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나에게 답답하다고 집에 있기가 싫다고 한다. 때로는 집에 돌아오면 딸에게만 눈길을 주고 나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어쩌다 남편과 이야기를 할 때 나는 남편에게 하는 말이 있다. 친구들을 만나지 말고 집에 있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남편은 알았다고 하지만 왠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남편에게 또 다른 말을 한다. 시어머니와 관계를 적당히 하라며 시어머니가 며느리인 자신에게 지나치게 했던 부분들을 나열한다. 그러면 남편은 어느새 말문을 닫고 밖으로 나간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나는 가만히 있는다.
 
마네킹처럼 꼼짝하지 않고 TV앞에 쪼그리고 앉아 숨만 쉬고 있다. 딸이 어린이집에 갔다 올 때까지 집안을 치우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있다. 어린 딸은 엄마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구석으로 가서 혼자 장난감을 갖고 꼼지락거리며 노는 것이 익숙해있다.

어린 딸이 내게 책을 읽어달라고 다가온다. 나는 “몰라”라며 멍하게 딸을 쳐다본다. 퇴근 후 남편이 무슨 말을 한다. 나는 “몰라, 기억나지 않아”라고 대답한다. 어떨 땐 남편이 조금 전에 했던 말이 왜 기억이 나지 않느냐고 묻는다. 나는 멍한 얼굴로 남편을 쳐다본다. 남편은 황당하다며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린다.

‘몰라, 기억나지 않아’는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다. 그러면 모두들 아무 말 없이 나를 더 이상 다그치지 않는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멍한 눈빛으로 살아왔다. 20대 초반 실연을 당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동생이 나를 보살피며 다정하게 대해주었다. 나는 그것이 좋았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부부싸움을 자주 하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멍한 눈빛을 하며 부모님을 쳐다보곤 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나의 멍한 얼굴을 보고 어머니에 대한 폭력을 멈추고 집밖으로 나가곤 했다. 그리고 어머니도 나처럼 멍하게 앉아 있곤 했다.

멍하게 있는 내가 마치 부모님의 부부싸움을 멈추게 하는 열쇠인 냥 익숙해졌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내게 누가 물으면 ‘몰라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대답하라고 하셨다. 나는 동네 사람들이나 친구들이 부모님이 또 싸우셨냐고 물으면 “몰라, 기억나지 않아”란 말을 앵무새처럼 되뇌었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방금 딸이 했던 말도 기억나지 않고, 남편이 내게 조금 전 했던 말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내는 ‘몰라, 기억나지 않아’로 자신의 삶의 많은 부분을 방어하며 살아왔다. 그러다보니 스스로 그 말을 따르는 자기 자신의 모습처럼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부터 아내는 자신이 무심코 하는 말에 책임을 지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자신은 결코 예전의 자신이 아니므로 현실의 주변사람들과 새롭게 관계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남편과 딸은 예전의 부모님이 아니다. 그리고 자신은 딸로서 현재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내이며 엄마로 살로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한다. 이에는 스스로의 의지가 가장 필요하며 스스로의 메시지를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몰라, 기억나지 않아’에서 ‘그래 기억해볼게’, ‘무슨 말인지 알고 싶다’, ‘그것을 기억해 볼게’, ‘나도 잘 할 수 있다’ 등 자신이 할 수 있다는 메시지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강하니라 - 잠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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