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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는 가라’
김재철 자유기고가 농학박사 전 농촌진흥청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15/04/08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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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장식장에는 큼직한 전복껍데기가 몇 개 있다.

 

아주 큰 것은 가로 20센티미터, 세로 15 센티미터 내외로 어른 손바닥보다도 더 크다. 크기도 크기려니와 껍질 안쪽의 형형색색의 광택은 보는 사람의 눈을 어지럽게 한다. 

 

육이오 동란이 발발하자 우리 가족은 대구를 거쳐 부산에서 3년가량 피난살이를 했다. 

 

동난 당시 다섯 살 배기였던 나는 한창 장난꾸러기였다. 바다가 눈앞에 보이는 남포동 사택에서 피난살이 할 때, 누나들 따라 영도 바닷가 바위위에서 전복을 먹었다. 

 

어린 나이에도 전복 살 씹히는 감촉과 맛이 아주 그만이었다. 이런 기억이 뇌리에 각인돼 전복껍데기는 어릴 적부터 귀중한(?) 소장품이 됐다. 그래서 큰 것만을 골라 몇 개 간직하게 됐다. 

 

지금은 대부분 종묘를 이용하여 양식을 하지만, 예전에는 그때그때 바다에서 건져 올린 순 자연산이다. 

 

전복껍데기는 나선 모양으로 감겨져 층이 있고 껍데기에는 구멍들이 줄지어 솟아 있는 데 뒤쪽의 층은 구멍이 뚫려 있어 물과 배설물의 통로가 된다. 그런데 어느 날 간직하고 있던 커다란 전복껍데기가 집안의 빨래비누통으로 쓰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물 빠지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으니 크기를 보더라도 뒤집어 놓으면 비누통으로는 아주 제격이었다. 

 

놀란 나는 다시 전복껍데기를 깨끗이 닦아 감춰 뒀다. 

 

전복껍데기는 나전칠기 목공품의 표면을 꾸미는 전통적 공예재료이기도 하지만 어깨 결림, 눈이 피곤할 때 가루로 내어 달여 먹으면 효과가 있어 한약재로도 쓰인다. 

 

불에 데었을 때 불에 구운 전복껍데기를 가루로 내어 데인 부위에 바르면 잘 낫는다는 것을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어 의아해 한 적이 있었다. 

 

동생이 전구에 데었는데 어머니께서 몸소 이 요법을 실천했다. 

 

당시 백열전구는 열 발생이 많아 텅스텐 필라멘트가 자주 끊어졌다. 

 

전구를 교환할 때는 전구가 뜨거워 위험했다. 그런데 뜨거운 전구에 팔을 데인 것이다. 

 

호두알만한 크기의 물집이 생겼으나 어머니는 전복껍데기를 태운 가루로 무난히 치료했다. 석회가 주성분인 전복껍데기 가루가 소염, 혈액응고에 효과적이었나? 

 

전복껍데기는 인간이 만든 최고 강도의 세라믹보다도 두 배 정도 더 강하다고 한다. 

 

그 비밀은 칼슘카보네이트와 고무성질을 갖는 천연 고분자가 반복해 층을 이루는 구조로 되어 있어 균열이 생기면 부드러운 부위가 즉시 막아줌으로써 손상이 더 이상 번지지 않는다. 

 

이렇게 단단한 전복껍데기 특성에 대해 많은 연구가 이뤄져 새로운 세라믹을 개발했고 탱크의 철갑도 만들어냈다. 

 

땅강아지의 땅 파는 모습에서 포클레인을, 연잎 효과를 이용하여 물방울이 흘러내리는 기능성 접시를 개발한 것과 같은 원리이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다. 

 

엘리엇은 <4월은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봄비로 활기 없는 뿌리를 일깨우기에> 진정한 재생을 가져오지 않고 공허한 추억으로 고통을 주어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한다. 

 

우리의 시인, 신동엽은? <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라고 절규했다. 

 

지난 일 년, <망각의 눈(雪)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뿌리로 가냘픈 목숨을 먹이고 있는> 공허한 고통의 4월 ‘세월 학생희생’과 껍데기들, 4월 학생민주혁명 당시 총 맞아 ‘희생’한 동창생과 껍데기들이 새삼 4월의 전복껍데기에서 오버랩 된다. 껍데기는 가라. 시인이시여, ‘쇠붙이’는 아닐지언정 전복 껍데기는 이해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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