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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름의 뿌리와 지명유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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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땅이름의 뿌리와 지명유래 <35>
소석 정찬모 작가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15/04/0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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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면(西新面) -5-

 

10.전곡리(前谷里)·앞실·전곡

 

본래 남양군 서여제면의 지역으로 구봉산 앞 골짜기가 되므로 앞실 또는 전곡이라 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통 폐합 때에 구릉내, 무두리, 은장동, 노가리, 독잣골을 병합하여 앞 실의 전(前) 자와 계곡이 많다는 뜻에서 곡(谷)자를 합하여 전곡리라 해서 수원군 서신면에 편입되었다.

 

구릉내(雲川洞-운천동)

 

앞실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서 움푹 들어간 지형의 마을로 물가 마을이다.

 

노화동(蘆花洞)

 

앞실 남쪽에 있는 마을로써 구봉산(九峯山)과 봉화산(峯花山)에서 흐르는 물이 서해의 조류와 합류하여 벌판을 이루고 이 벌판에는 갈대꽃이 무성하여 갈대꽃이 피면 장관을 이룬다고 해 노가리(蘆街里)또는 노화리(蘆花里)라 불려 지게 되었다 한다.

 

당곶(唐串)·당곶이

 

당곶이는 삼국시대 때부터 당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포구를 만들고 무역선이 드나들던 곶이라 하여 당 곶이란 이름이 붙여  졌다고 하나 ‘당’은 ‘산’을 가르키는 말로 산이 바다 쪽으로 많이 튀어 나온 지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독자골(獨自洞) 족자골

 

‘족’은 ‘작다’의 뜻으로 많이 쓰이고 ‘자’는 고개에 붙는 옛말로서 작은 고개가 있는 마을에 붙은 지명으로 보인다.

 

‘재(峴-현)’의 옛말로는 ‘지(只)’, ‘지(支)’, ‘지(知)’, ‘지(旨)’, ‘직(直)’ 또한 ‘잣’, ‘자’등으로도 나타난다.

 

잣  >  자  >  재

 

무두리(뭇두리)

 

구름내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무’는 물을 가르키고 ‘두리’는 머리를 가르키는 말로 위쪽 물가 마을의 이름으로 본다.

 

앞실(前室-전실)

 

구봉산 앞의 골짜기가 되므로 앞실 또는 전곡(前谷)이라 하였다. 이 마을은 한양서 낙향한 세도가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타 지역보다 풍부한 생활을 할 수 있어 앞서가는 마을이라고 해서 앞실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은장동(隱 藏洞)·은쟁이

 

노가리 남쪽에 있는 마을로서 봉화산이 둘려 쌓여 숨은 것 같은 마을이라서 은장동으로 부리운 것으로 보인다.

 

왜실(矮室)

 

외진 골짜기 속에 위치한 마을로 적은 마을로서 이러한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11. 제부리(濟扶里)

 

본래 남양군 신리면의 지역으로 지형이 젖꼭지처럼 생겼다고 해 젖부리, 젖비, 또는 제부동이라 하였는데 또한 조선 중엽이후 이곳과 송교리를 연결한 갯벌고랑을 어린아이를 업고 노인을 부축해 건넌다는 제약부경(濟弱扶傾)이라는 말에서 제부리로 개칭 됐다는 설도 있다. ‘갓부리’, ‘딱부리’, ‘젖부리’등에서의 ‘갓’, ‘딱’, ‘젖’은 모두 산(山)을 뜻하는 말로 보이며 이 말들은 각각 ‘갇’, ‘닥(닫)’, ‘잣’이 그 원뿌리로 보이며 이 말들이 모두 산(山)이나 ‘높은 곳’을 뜻하는 옛말이기 때문이다. ‘부리’가 뾰족한 것을 뜻하므로 ‘갓부리’, ‘딱부리’, ‘젖부리’등의 이름은 단순히 ‘산봉우리’의 뜻을 지닌 이름이라 할 수가 있다.

 

12. 홍법리(弘法里)·홍법굴

 

본래 남양군 신리면 지역으로 1611년(광해군3)에 건립된 홍씨문중의 원찰인 홍법사가 있으므로 홍법굴 또는 홍법동이라 하혔는데 1914년 삼밭골, 모래지를 병합하여 홍법리라 해서 수원군 서신면에 편입됐다.

 

각골(角谷-각곡)

 

원래 ‘갓’이 자음동화 관계로 ‘ㅅ’이 ‘ㄱ’로 바뀐 경우로 ‘각골’로 바뀐 것으로 보여 ‘갓골’은 발음상 ‘각골,’ ‘갑골’이 되기도 해서 ‘각동리’, ‘각리’등으로 되기도 하고 ‘가곡’, ‘가술’, ‘가재리’등으로 쓰였으며 ‘가장자리’를 일컫는 마을 이름이다.

 

도리도(桃李島)

 

큰말 남쪽에 있는 섬마을로 도랫말 이라는 마을  이름을 많이 볼 수 있으며 도래골(도랫골)을 줄여 ‘도래’라고 한다. 산이 둘러 있어서 붙이는 경우와 내(川)가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경우에도 붙여진다. 도리골을 한자로 바뀌어 ‘도이리’라고 불리며 도림리, 도리미등도 같은 지명이다.

 

삼밭골(麻田谷-마전곡)

 

큰말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써 옷을 만들어 입던 마(麻)가 많이 자생되었고 이를 재배하여 생업을 이어가던 가구가 많아 마전(麻田)으로 불리어 오다가 삼밭골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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