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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되돌아 보다
김재철 자유기고가 농학박사 전 농촌진흥청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15/07/01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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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오리엔트문명, 그리스·로마문화, 기독교와 이슬람문화가 뒤섞여 도시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스탄불. 

 

일찍이 토인비가 ‘살아있는 인류문명의 거대한 옥외 박물관’이라 언급한 이스탄불. 

 

이스탄불 히포드럼 광장에 도착한다. 

 

‘말의 광장’이라 불리는 이곳은 로마시대 전차경기가 열리던 광장으로 블루모스크 바로 앞에 있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콘스탄티누스 기둥. 콘스탄티누스 7세가 할아버지 바실레우스를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는 돌 벽돌기둥이다. 

 

본래 표면은 청동으로 씌워져 있었으나 4차 십자군 원정군에게 동전 제조용으로 뜯겼다. 

 

뒤쪽으로 구불구불 뱀 모양의 청동기둥 세펜타인. 델피의 아폴론신전에 있었던 것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이곳으로 옮겨 왔다. 

 

세 마리의 뱀들이 서로 꼬아가며 올라간 형상으로 깨어진 머리 한 개는 이스탄불박물관에, 또 한개는 대영박물관에 있다.

 

세펜타인을 사이에 두고 콘스탄티누스 기둥과 마주하는 오벨리스크는 기원전 1490년 이집트 투트모스 3세가 카르나크신전에 세운 4개 중 하나였는데 데오도시우스 황제가 세 조각으로 절단해 이곳으로 운반했다. 

 

건너편의 블루모스크는 이슬람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기념물로 소피아성당에 대항해 17세기에 건축한 6개의 첨탑을 가진 전통 회교사원이다. 

신발을 벗고 사원 안으로 들어간다. 

 

넓은 홀 안쪽 알라신을 모신 성단을 향해 많은 이슬람들이 엎드려 기도한다. 라마단 기간에는 회랑으로 둘러싸인 광장에도 참배객들로 가득 찬다고 한다. 

 

‘제가 이 엄청난 일을 성취하도록 해주신 하느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나는 솔로몬, 당신을 이겼습니다’ 

서기 537년, 하기아 소피아 준공식에서 황제 유스티니아누스는 이렇게 말했다. 

직경 31m의 엄청난 돔 지붕이 어떻게 공중에 떠 있을 수 있을까? 비밀은 양쪽의 작은 돔과 버팀목에 있다. 

건축가 안테미우스와 이시도도루스의 작품으로 세계 건축학상 8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오스만제국의 메메드 2세는 소피아성당을 파괴하지 않았다. 그저 하얀 천으로 벽화를 가려 이슬람사원으로 사용했을 뿐 ‘지혜’의 의미인 소피아 이름도, 콘스탄티노플 명칭도 그대로 사용했다. 그러나 4차 십자군 원정군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 주민들을 학살하고 소피아를 약탈한다.

 

소피아는 916년 동안 성당으로 그리고 477년 동안 회교사원으로 사용되다가 케말 파샤에 의해 박물관으로 전환된다. 

 

오스만은 1차 세계대전 패배와 세브르 조약으로 루마니아, 몬테네그로 등 발칸지역과 키프로스 등 제국의 모든 정복지를 상실해 이스탄불만 남게 될 운명이었다. 이때 케말 파샤는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사카리아 전투에서 그리스 군을 전멸시킨 뒤 세브르 조약을 폐기하고 로잔 조약을 체결하여 아나톨리아 즉 현재의 터키 영토를 지켜냈다. 

 

사후 케말 파샤는 ‘터키의 국부’로 추앙 받는다. 

 

2005년 4월 터키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터키 대통령과 환담 중 한 구절 읊어 호감을 자아내게 한 ‘위스크다르’. 

 

한국전 참전 터키 군인들에 의해 우리에게 친숙해진 터키의 전통 민요이다. 바로 돌마바흐체 궁전 맞은 편 해안이 위스크다르이다. 보스포루스 해협 유람선이 돌마바흐체 궁전 앞을 지난다. 케말이 집무실로 사용하던 궁전, 그는 이곳에서 서거했다. 숨진 시각은 9시5분. 현재 돌마바흐체 궁전의 모든 시계는 9시5분에 멈춰있다. 

 

발렌스 수도교, 콘스탄티노플 성벽을 지나 톱카프 궁전으로 간다. 

 

메메드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후 오스만 건축양식으로 세운 궁전이다. 

 

왕실주방을 개조한 박물관에는 80캐럿이 넘는 물방울 다이아몬드. 다윗왕의 단검과 모세의 지팡이, 아브라함의 밥그릇, 세례요한의 손뼈 등 진귀한 보물들로 가득 차 있다. 특히 동양 자기 컬렉션은 유명하다. 

 

그랜드 바자르 노천카페에서 체즈베 커피를 마시면서 생각한다. 왜 우리는 케말 같은 지도자를 갖지 못했을까? 

 

케말은 동서화합을 위해 소피아를 박물관으로 전환했고 우리는 역사를 잊기 위해 조선총독부를 지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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