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고개

화성시 봉담읍 분천리의 태봉산과 각시봉 중간쯤에 분천리에서 왕림으로 넘어가는 산고개가 잇는데 이 고개를 옛날부터 ‘노루고개’라 불러오고 있다. 고개 이름이 노루고개라 불리고 있는 데는 그러한 연유가 있어서였다.

 지금으로부터 약 480년 전의 일이었다. 고려 광종 때의 신호위대장군(神虎衛大將軍)을 지낸 이언(李彦)을 시조(始祖)로 하는 함평 이씨가 살고 있었다. 그의 세손의 위(違)는 량(良), 자는 자방(子房)이라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무과에 등제하여 의주목사(義州牧使). 병사(兵使).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등을 역임해 함천군(咸川君)에 봉군(封君)된 사람이었다. 이량(李良)(1466-1511)이 돌아갔을 당시의 일이다.

 어느 날 아들이 뒷산에 올라 양지바른 곳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이때 홀연히 노루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구원을 청하는 듯 슬프고 가련한 모습으로 어쩔 줄을 모르면서 허리에 차고 있던 화살집을 비벼대 애원 하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이상히 여기면서 근처에 있는 풀잎으로 덮어주었다. 그때였다. 사냥꾼이 헐레벌떡 뛰어오면서 노루의 도망친 방향을 묻는 것이었다. 그는 태연한 태도로 못 보았노라고 대답하니 사냥꾼은 그대로 각시봉 쪽으로 가면서 “이곳으로 지나갔을 텐데”하고 중얼거리면서 지나가고 말았다.

그는 사냥꾼이 지나간 뒤 곧 풀잎에 숨어 있는 노루를 일으켜 주었다. 그러자 노루는 몸에 묻은 풀을 훌훌 털고는 이제는 살았구나 하는 듯 의기양양하게 사람들이 다니는 산 고개를 넘어 어디론지 가고 말았다. 그리하여 이때부터 이곳 사람들은 이 고개로 노루가 넘어 갔다고 하여 ‘노루고개’라 불러오고 있다.

 그 며칠 후의 일이었다. 그가 꿈을 꾸었는데 꿈에 어떤 노인이 나타나더니 지난 번 내가 갑작스레 사경에 이르렀을 때 구해 주어서 고맙다고 사례를 한 다음, “나는 본래 산(山)의 신(神)으로서 산이 하도 조용하기에 대자연과 더불어 잠시 즐기고자 하는 마음으로 노루로 변신해 놀고 있었는데, 별안간 뜻하지 않은 포객(暴客)을 만나 하마터면 죽음에 직면하는 변을 당할 뻔 했는데 당신이 구원해 주어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소. 그러하니 내생명의 은인으로서 보은을 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인즉 당신에게 묘자리를 하나 일러 주리라”하고는 노인은 꿈에서 사라져 갔다. 꿈에서 일러준 묘자리는 태봉산에서 남향으로 뻗어 있는 래용(來龍)이었다.

 그 후 얼마 안 있어 부친인 함천군이 별세하게 되었다. 그는 이처럼 상을 당하게 돼 장례 준비를 할 즈음에 좋은 묘자리를 잡기 위해 이산 저산을 돌아다녀 보았으나 별로 신통한 곳이 없었다. 그래서 전날 현몽(現夢) 하였던 곳에 가서 보니 과연 길지라고 지사는 탄복을 하는 것이었다.

그 뒤 이곳에 산소를 쓴 뒤부터는 가세가 번창하면서 자손들이 복록을 누리게 되고 번족하게 되었는가 하면 대대로 내려가면서 문무(文武)할 것 없이 벼슬길에 많이 올랐을 뿐 아니라 고결청백한 문장가가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조선조에 문과에 급제한 사람이 70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특히 중시조(中始祖)인 장양공(莊蘘公) 이종생(李從生(시조의 10대손))은 세조때 무장으로서 이시애난(李施愛亂) 토평에 큰 공을 세웠으며 각도의 병마절도사를 역임했는데 함평 이씨가 배출한 문무의 현신은 거의 그의 후손이었다.

 조선 정조 때에 이르러서였다. 정조가 사도세자의 묘소를 화산에 이장하고 본래 수원의 도읍지를 팔달산 밑으로 옮길 때였다. 정조는 지극한 효성에서 내가 죽거든 우리 아버지 산소 근처에 묻어 달라고 해 같은 화산에 묻히게 되었다.

그 때 능을 중심으로 하여 능성을 정 할 때에 태봉산이 모두 이 구역에 들어가게 되었으나 태봉산 일대에는 함평 이씨의 묘들이 있는지라 나라에서도 이곳은 제외토록 하였다. 현재 함평 이씨의 종산이 9만평에 이르고 있어 선조들의 내력을 짐작케 하고 있다.

 함평 이씨들은 아무리 좋다 해도 노루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출처: 화성시사편찬위원회 발행 ‘충효·예의 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