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땅이름의 뿌리와 지명유래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연재] 땅이름의 뿌리와 지명유래<64>
경기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정찬모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16/04/06 [11:34]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쉰길바위 (1)

 

화성시 정남면 문학리에 서봉산(棲鳳山)이 있다. 이 산은 옛 부터 봉황이 깃드는 산이라 해 서봉산이라 불러오고 있으며 사람들은 이 산을 신성시 해 산 안팎을 중심으로 곳곳에 마을을 형성해서 살고 있고, 또한 젊은이들은 호연지기(浩然志氣)를 기르기 위해 쉰길바위의 암벽을 오르내리며 이곳에 매달려 턱걸이를 하는 등 심신을 단련하기도 했던 곳이다.

 

 서봉산 중턱에는 옛날부터 작은 암자가 있었는데 젊은 스님과 동자중 하나만이 살고 있었고 스님은 매일같이 마을에 내려가서 시주걸립(施主乞粒)을 다니는 것이 일과였다.

 

 어느날 스님은 시주걸립을 마치고 암자로 돌아가는 길에 마을 어귀에 이르러 갈증이 나자, 늘 다니던 우물을 찾아갔다. 그때 물을 긷던 아낙네들은 물동이를 이고 하나 둘씩 마을로 들어가고 있었으며 젊은 스님이 우물 가까이 갔을 때는 어떤 낭자 혼자만이 남아 물동이에 물을 담고 있었다. 젊은 스님은 낭자를 바라보는 순간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훤칠한 몸매에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곱기가 이를 데 없어 하늘에서 선녀가 하강(下降)해 노닐고 있는 듯해서 “참 아름답기도 하다”하고 감탄하면서 우물가에 다다랐다.

 

낭자는 뒤에서 인기척이 나서 돌아다보니 젊은 스님이 다가서는 것을 보고 불길한 예감이 들어 물 긷던 바가지와 물동이도 버려둔 채로 마을로 향해 줄달음을 쳤다.

 

스님은 낭자가 놀래서 뛰어가는 것을 보고는 우두커니 뒷모습만 바라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자기로 인해 물동이마저 놓고 간 낭자에게 미안한 생각과 함께 다시 한 번 보았으면 하는 엉뚱한 생각에서 물동이에 물을 가득 채워 나무 밑에 놓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 동안 해는 서산에 기울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스님은 피곤한 나머지 물동이 옆에서 잠이 들고 말았다.

 

 이튼 날 아침 스님이 잠에서 깨어날 즈음이었다. 이때 마침 어제 그 낭자가 일찌감치 동이를 찾으러 오다가 물이 가득찬 동이 옆에서 스님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스님은 잘못이라도 했다는 듯이 낭자를 바라보며 합장하고 머리 숙여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을 외운 다음 그곳을 떠나려고 했다.

 

그때 낭자가 어제 있었던 자기의 행동이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어 바가지에 물을 떠서 스님에게 권하자, 스님은 또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물을 받아 마신 다음 아리따운 낭자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암자로 돌아갔다.

 

 한편 암자로 돌아온 스님은 낭자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려 잠이 오질 않았고 불경을 외우는 것도 마음이 내키질 않았으며, 시주걸립도 떠나기가 싫었다. 불도에만 골몰무가(汨沒無暇)해야 할 스님의 처지에서 속세의 낭자가 그리워 변민하고 있는 것은 불제자의 도리가 아닌 줄 알면서도 점점 더 마음이 혼란에 빠져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스님은 모든 것을 잊기로 결심하고 다시 마을로 시주걸립을 떠났다.

 

 한편 낭자네 집에서는 부친이 우연히 병이 나서 눕게 됐다. 그래서 백방으로 약을 구해다 쓰고 용한 의원을 불러 치료를 해 보았으나 효험이 없었다. 낭자는 부친의 병환이 여의치 않자 근심과 걱정으로 나날을 지내다 보니 몸이 수척해지기까지 했다. 그 즈음 스님은 지나는 길에 자신도 모르게 우물을 찾았다. 거기서 스님은 낭자를 만나게 되자 반가운 마음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다음호에 계속>

 

출처: 화성시사편찬위원회 발행 ‘충효·예의 고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화성신문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인기기사목록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