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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름의 뿌리와 지명유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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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땅이름의 뿌리와 지명유래<65>
경기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정찬모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16/04/1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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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길바위 (2)

 

한편 암자로 돌아온 스님은 낭자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려 잠이 오질 않았고 불경을 외우는 것도 마음이 내키질 않았으며, 시주걸립도 떠나기가 싫었다. 불도에만 골몰무가(汨沒無暇)해야 할 스님의 처지에서 속세의 낭자가 그리워 변민하고 있는 것은 불제자의 도리가 아닌 줄 알면서도 점점 더 마음이 혼란에 빠져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스님은 모든 것을 잊기로 결심하고 다시 마을로 시주걸립을 떠났다.

 

한편 낭자네 집에서는 부친이 우연히 병이 나서 눕게 되었다. 그래서 백방으로 약을 구해다 쓰고 용한 의원을 불러 치료를 해 보았으나 효험이 없었다. 낭자는 부친의 병환이 여의치 않자 근심과 걱정으로 나날을 지내다 보니 몸이 수척해지기까지 했다. 그 즈음 스님은 지나는 길에 자신도 모르게 우물을 찾았다. 거기서 스님은  낭자를 만나게 되자 반가운 마음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미소를 띠우는 낭자의 얼굴에는 수심이 서려있어 사연을 물어본 즉 부친의 병환 때문인 것을 알았다. 스님은 그 자리에서 약 처방을 써 주고는 차도가 있은 뒤 자기의 암자에 와서 3일간 불공을 드리라는 말을 남기고 암자로 돌아갔다.

 

그 후 낭자는 스님의 처방대로 약을 다려 부친에게 드리니, 병세는 금방 호전 됐다. 그래서 스님 말대로 삼일 간 불공을 드리기 위해 부친의 수락을 받은 다음 돈과 음식을 장만해 가지고 서봉산 암자에 들어갔다. 스님이 일편단심 낭자의 생각으로 지새던 차에 낭자가 부친의 병환이 좋아져서 약속대로 불공을 드리러 온 것이었다.

 

낭자가 정성을 다해 부처님께 불공을 드린 다음 스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떠날 때였다.

 

스님은 그 동안 자기가 낭자를 사모해 잊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자초지종 솔직히 고백했다. 즉, 낭자를 처음 만날 때부터 지금까지 그리워하는 마음이 솟구쳐 한시라도 잊을 수가 없으니 낭자와 함께라면 불도수행(佛道修行)을 떠나서 환속을 하겠다는 하소연이었다. 낭자는 뜻밖의 일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나 스님의 처지를 생각해서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낭자는 부친의 승낙을 빙자해서 그날은 암자를 떠나왔다.

 

 

<다음호에 계속>

출처: 화성시사편찬위원회 발행 ‘충효·예의 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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