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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름의 뿌리와 지명유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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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땅이름의 뿌리와 지명유래<66>
경기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정찬모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16/04/25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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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길바위 (3)

 

이튿날 낭자는 암자에 가서 스님을 만났다. “스님께서는 여러 해 동안 불도에 몸담아 오신 터에 쉽사리 속세로 환속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스님은 대답하기를 “소승이 불도의 길을 걷고 있음은 지당한 말씀이오나 낭자를 두고는 도저히 마음을 가다듬을 수가 없어 환속하기로 결심을 한 것이오니 소승의 마음을 헤아려 주십시오”하고 말했다. 

 

낭자는 또 다시 “그렇다면 스님께서는 환속을 약속한다는 표시로써 저 서봉산 위 쉰길바위에서 턱걸이 백번을 한다면 기꺼이 응하겠소” 했다.

 

젊은 스님은 그 까짓 백번쯤이야 걱정 없다는 듯 희희낙락하며 자신 있게 승낙을 했다. 그리해 두 사람은 바위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스님은 의기 있게 팔을 걷어 부치고 턱걸이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거뜬거뜬 올라갔으나 횟수가 더해 갈수록 힘이 들었고 80번이 넘어가면서부터는 더욱 힘이 들었다. 스님은 사생결단 있는 힘을 다해 턱걸이를 했지만 백번을 채우지 못하고 99번째 가서 기운이 빠지고 의식이 몽롱해지고 손이 풀리면서 급기야는 높이가 쉰길이나 된다는 바위의 벼랑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낭자는 스님을 부르면서 절벽 아래로 뛰어 내려갔으나 스님은 이미 유혈이 낭자한 채 숨을 거둔 후였다. 낭자는 생각하기를 “내가 너무 지나친 요구를 하여 스님이 불의의 변을 당했구나” 하고 슬픔을 못 이겨 한참을 엎드려 울고 있다가 일어나니, 자기 앞에는 난데없이 바위가 하나 우뚝 솟아 나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로부터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가 스님의 이루지 못한 영혼이 깃들어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다고 하여 ‘눈물바위’라 불러오게 됐으며 쉰길바위와 함께 지금까지도 스님과 낭자의 한 맺힌 사연이 담겨져 전설로 내려오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출처: 화성시사편찬위원회 발행 ‘충효·예의 고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화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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