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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신문의 전문가 칼럼 화성춘추 (華城春秋) 107]
코로나 노마드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1/07/05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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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찬석협성대학교 교수     ©화성신문

새롭고 신선한 생각을 떠올려야 할 때 사람들은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공간을 동경한다.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환경보다는 낯선 환경이 신선한 영감을 주리라는 기대감으로 일상에서 벗어난다. 벨기에의 작가 M. 메테를링크의 동화극 <파랑새>에서 남매 틸틸과 미틸은 행복의 상징인 파랑새를 찾아 나선다.

 

다양한 곳에서 신비로운 체험을 하며 파랑새를 만나지만, 파랑새는 그들의 손에 닿자마자 색이 변하거나 죽어 버리고 만다. 집으로 돌아온 틸틸과 미틸은 결국 집안의 새장에서 파랑새를 찾게 된다. 파랑새는 멀고 낯선 곳이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 속에 있음을 메테를링크는 이야기하고 있다. 익숙하고 반복되는 일상에 신선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을까? 라는 생각에 메테를링크는 도전한다.

 

마음을 정하고 결단하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도 한다. 어떤 사람이 미켈란젤로의 조각에 감탄하면서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볼품없는 돌로 어떻게 이런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까?” 이 질문에 미켈란젤로는 이런 대답을 하였다. “그 형상은 처음부터 화강암 속에 있었죠. 나는 단지 불필요한 부분들만 깎아냈을 뿐입니다.” 평범한 사람의 눈에는 볼품없는 돌이지만 조각가의 눈에는 볼품없는 돌 안에 멋진 작품이 들어 있었다.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삶을 미술가로 정하였기 때문에 화강암 안에 숨겨져 있는 훌륭한 작품이 보였다. 마음을 정하면 정해진 마음은 분산되지 않고 집중하게 되어 안 보이던 것이 보인다.

 

뱃사공은 자신이 젖는 노에 집중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지만 드넓은 물을 보지 못할 수 있음을 시인 고은은 짧은 시를 통해 표현한다.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 보았다.” 뱃사공은 노를 놓지 않고 놓쳐 버렸다. 실수로 놓쳐 버렸든, 다른 생각을 하다가 놓쳐 버렸든지 노는 뱃사공의 손을 떠나 버렸다.

 

뱃사공이 자의적으로 노를 놓았기보다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노를 놓쳐 버렸다. 뱃사공 자신에게 주어진 일, 노 젖는 일에 집중하다가 노를 놓쳐 버린 순간은 카이로스의 순간이다. 현실의 세계에서 영원의 세계를 경험하는 순간이 카이로스의 순간이다. 뱃사공의 카이로스는 낯선 곳이 아니라 자신의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삶에서 찾아왔다.

 

‘디지털 노마드/유목민’이라는 말이 코로나19 이전에 유행하였었다. 인류는 원래 유목민적 삶을 살았으나 농업 혁명으로 정착민의 삶으로 전환하였다. 세계화와 4차 산업혁명으로 정착민의 삶보다는 전 세계를 누비는 유목민적 삶이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삶의 동선은 끊기거나 좁혀졌고, 다시 정착민의 삶으로 돌아가고 있다. 먼 거리로의 이동이 단절되고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이 줄어들면서 삶의 외부보다는 내부에 더 집중하게 만들고 있다.

 

무화과나무는 꽃을 피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속으로 꽃을 피운다고 한다. 인류는 세계화와 4차 산업혁명으로 정착민의 삶보다는 유목민적 삶의 방식에 매력을 느꼈으나 코로나19는 정착민의 삶을 강요하면서 온라인(비대면)을 통한 외부의 접속을 공부하게 만들고 있다. 코로나19의 팬데믹은 유목민적 삶에서 정착민의 삶으로 전환하라고 요구하기보다는 유목민적 삶과 정착민의 삶의 융섭(融攝)을 체득하도록 일깨워주고 있다.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의 출애굽기에 보면, 이스라엘의 영웅인 모세는 호렙산이라는 곳에서 신(神)을 만난다. 그때 신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모세도 낯선 곳이 아니라 매일 매일 자신에게 주어진 일인 양을 치다가 신(神)을 만나 거룩함을 경험하고 신을 벗는다. 그러나 신을 벗으면 신(神)을 만날 수 있고, 거룩함을 경험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류는 정착민의 삶을 살아가면서 온라인으로 노마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진실함과 성실함으로 주어진 일상을 살아가면서 신(神)을 만나고 거룩함을 경험하여 신고 있던 신발을 벗는 낯선 경험을 누려야 한다. 주어진 삶 안에서 점을 찍으면 내 안에 거룩한 성지가 세워지고 지루한 나의 일상이 성화(聖化)될 수 있음을 마음에 새겨보아야 한다. 이 코로나19의 팬데믹의 상황에서. 

 

chanseok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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