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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신문의 전문가 칼럼 화성춘추 (華城春秋) 139]
부모의 이율배반(二律背反)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2/03/14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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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수연 장안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 교육학박사     ©화성신문

다섯 살 쯤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가 떨어진 휴지를 주우며, “엄마, 내가 휴지 주웠어. 쓰레기통에 버릴거야” 하며 칭찬을 기다리는 눈망울로 엄마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엄마는 갑자기 크게 화를 내며 당장 휴지를 버리라고 소리쳤다. 아이는 엄마의 화난 표정에 놀라 울면서, “엄마가 휴지는 쓰레기통에 버리라고 했잖아. 왜 화를 내?”하고 묻는다. 

 

엄마는 당황하면서도 계속 화를 냈다. 

 

“대꾸하지 말고 얼른 버려!” 

 

 

 

아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 엄마의 야단에 당황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아이는 엄마를 불신하게 되고, 불신은 곧 엄마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끝내는 엄마 말을 무시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부모는 앞뒤가 맞지 않는 언행을 자녀에게 종종 보여 준다. 인스턴트 음식이 좋지 않다고 하면서 인스턴트 음식을 사주는 부모, TV를 오랜 시간 보지 말라고 하면서 저녁 내내 TV를 시청하는 부모, 자녀의 행동을 매번 간섭하면서도 스스로 알아서 행동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부모 등등. 종합해 보면 ‘자녀에게 하는 말과는 달리 자신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을 이율배반(二律背反), 자가당착(自家撞着), 모순(矛盾) 등의 용어로 지칭한다. 좋게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에서 부모들은 부지불식간에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한다. 부모의 이율배반적인 행동은 자녀에게 그대로 전파된다.

 

평소에 ‘제발 간섭하지 말고 내가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라’고 주장하던 자녀가 어떤 때는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고 원망한다. 어쩌면 자녀양육은 부모의 이율배반적 행동과 자녀의 이율배반적 행동 간의 충돌이며, 이 충돌에서 부모-자녀 관계의 거의 모든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자녀양육에서 나타나는 많은 문제는 부모와 자녀의 이율배반적 행동의 이해와 원만한 조화를 통하여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이율배반적 행동은 어떤 말을 믿어야 할지 자녀에게 당혹감을 주며, 나아가 인성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이율배반적 행동은 부모의 시행착오적 행동이다. 칸트와 헤겔에 의하면 이율배반적 행동은 나쁜 행동이라기보다 진리로 다가가는 행동으로 간주된다. 시계추가 양극단을 오고 가다가 중립적 위치에서 안정을 찾듯 이율배반적 행위의 교차 속에서 자녀양육의 올바른 방안이 정립되는 것이다. 

 

절대적 진리와 상대적 진리가 양분되어 있더라도 진리의 적용은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앞의 예로 다시 돌아가 보자. 어머니는 평소 휴지를 주워서 쓰레기통에 버리라고 교육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집이 아니라 코로나 선별 검사소였다. 어머니는 장소가 장소이다 보니 떨어진 휴지의 오염 상태로 인한 감염이 우려되어 급박한 마음에 큰소리를 치게 되었다. 그러나 어린 자녀는 상황의 차이, 즉 자신이 속한 조건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칭찬받을 행동을 기대했는데 야단을 맞게 되니 어머니가 이상해 보였을 것이다. 

 

여기서 이율배반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자. 이율배반으로 보이는 부모의 행동을 무조건 강요하면 자녀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나 조건이 달라졌음을 설명하고 이해하도록 해 주면 이율배반이 아니라 조건에 부합되는 진리가 된다.

 

그러나 유념할 것은 부모의 조건에만 부합되는 것은 말 그대로 이율배반이다. 

 

자녀는 여전히 같은 조건이기 때문에 부모의 행동은 이기심의 표현이고 부모의 언행은 신뢰를 상실하게 된다. 부모는 불신의 존재가 된다. 객관적 조건이 달라졌을 때 서로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된 이율배반적 행동은 진리로 가는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의존적 자녀에서 독립적 자녀로 키우는 과정에서 부모는 이기심에 의한 이율배반이 아니라 이타심에 의한 이율배반을 적용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이는 자녀의 행동 표현에서도 마찬가지이므로 현명한 지도가 필요하다.

 

syhaa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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