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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국군 감동 수기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
‘의인’(義人)의 아름다운 전역’<1>
김동필 시민기자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15/01/07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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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김동필 시민기자가 지난해 국방부의 ‘2014 국군 감동 수기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이 공모전은 자랑스러운 군인상을 확립하고 건강한 병영문화를 실천한 사례를 알리기 위해 시행한 것이다. 김동필 기자는 이 수기를 통해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돕다가 교통사로를 당해 오랫동안 치료해야 했던 사연을 알려 잔잔한 감동을 줬다.
이에 2회에 걸쳐 이 수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이 추운 날씨에 길거리에 왜 쓰러져 계시지? 어디 혹시 다치신 건 아닐까?”

필자는 1993년 3월 11일 저녁 7시 30분 경 전역휴가 중에 가정형편이 어려워 용돈을 벌기 위해 서울 신정동 이종사촌 댁에 머물면서 막노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길 모퉁이에 쓰러져 있는 50대 아저씨를 발견하였다. 아직 3월이라 밤 기온은 영하로 떨어질 것이고, 또 그 아저씨를 그대로 방치했다간 무슨 사고라도 발생하지 않을 까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쓰러진 아저씨에게로 다가가서 깨웠지만 만취 상태로 거의 사람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인사불성이였던 것이다.

“아저씨! 아저씨? 아저씨!”
 
“…응…어…뭐야! 왜 이래!”

“아저씨 댁이 어디세요? 아저씨 일어나 보세요!”

“응…어엉…뭐야! 저리 비껴!”

“아저씨! 집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나요?”

아저씨를 수차례 흔들어 깨워서 간신히 바닥에 앉힌 다음 집 전화번호를 겨우겨우 알아내어 전화를 했다. 아저씨의 부인은 화곡동 화곡시장에서 어렵게 포장마차를 하고 계신 분이였고, 지금은 포장마차 장사 때문에 올 수 없다고 얘기했다. 그리곤 아저씨 부인은 나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저기 죄송한데 화곡시장 입구까지만 모셔다 줄 수 없을까요?

“네! 택시타고 모셔다 드릴게요! 화곡시장 입구까지만 가면 되나요?”

“네! 고맙습니다. 오셔서 인근 공중전화에서 전화 주세요!”

“네! 알았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선뜻 대답은 했지만 시골 출신인 나는 서울 지리도 낯설어 솔직히 난감했다. 신정동에서 화곡시장 입구까지 어떻게 가야하는지도 모르겠고, 또 택시를 타면 요금이 얼마나 나오는지 몰랐다. 그렇다고 아저씨를 이대로 그냥 방치해 두면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갔다. 게다가 아직 3월 초순이라 저녁 날씨로는 겨울처럼 추웠기 때문에 아저씨를 한시라도 빨리 옮겨 집까지 모셔다 드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 내가 그래도 강원도에서 두 번이나 내설악을 누비면서 혹독한 동계훈련도 두 번 겪었고, 또 그 힘들다는 천리행군까지 2연패 하였던 그야말로 특공대 출신 아닌가! 그런 내가 이 아저씨 하나 보호하지 못한다면 천하의 특공대가 아니지!’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아저씨를 부축해서 간신히 큰길까지 나가 택시에 태워 같이 무조건 화곡동 화곡시장 입구까지 내달렸다. 그러나 아저씨는 택시 안에서도 거의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였는데, 나는 속으로 이 아저씨가 무슨 사연이 있어 초저녁에 이리 술에 만취가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화곡시장 입구에서 택시비를 내고 택시에서 내려 편도 1차선 옆 인도에서 자꾸 쓰러지려고 하는 아저씨를 간신히 부축해서 공중전화 부스를 두리번거리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니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가? 머릿속에서 끊어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지금 육체의 고통 보다 나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은 잃어버린 나의 시간이다. 눈을 뜨니 주위에는 눈부신 불빛들과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분주히 오가면서 내 주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누구이며, 내가 여기에 왜 와 있으며, 내 주위에 있는 이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택시에서 내린 이후로 내 기억은 저 멀리 처음 신정동 골목길 그 ‘환경미화원 아저씨’에 멈추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의식이 온전히 회복하기도 전에 온몸에 고통과 통증이 태산처럼 밀려 왔다.

“환자분!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환자분!”

“아!…아!…”

“환자분! 정신 드세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집이 어디세요?”

“아! 아!……아!”

“환자분 여기가 어딘지 아세요? 이제 정신이 드세요?”

“…아…아…”

나는 의식을 회복했지만 지난 23년간 불리어 온 내 이름 석자 조차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고, 내가 왜 여기 누워 있는지, 그리고 옆에 있는 이 사람들은 누구인지 기억부터 되살리고 싶었지만 도무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내 눈에 보이는 확실한 것은 이곳은 지금 병원 중환자실이고 나는 끊겨 버린 시간 중간에 이곳으로 누군가에 의해 옮겨진 것이다. 좌측 다리 대퇴부가 두 동강 나서 통증으로 꼼짝할 수 없었고, 허리는 척추 요추 2번과 흉추 12번 골절되어 몸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시켜 놓았다. 또 얼굴과 머리는 온통 피투성이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위쪽 치아는 두 개가 부서진 상태로 중환자실에서 닝겔을 맞으며 꼼짝 없이 누워 있어야만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내 지나온 삶의 무게의 시간만큼이나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차츰차츰 ‘단절된 시간’의 기억들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다음호에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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