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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0년의 기억, 10년의 사람
 
서윤석 기자 기사입력 :  2015/04/2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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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신문이 지면신문 발행을 시작한 2005년에 각 회사에 입사한 새내기들이 어느새 중추로 성장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격언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화성시 곳곳에서 회사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인재로 성장했다.

 

화성신문이 지면발행을 시작한 2005년 입사자들을 찾아 10년간의 소회를 들어보고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본다. 

 

“10년차 경찰, 하지만 현장이 날 부른다”

화성·오산 지역 위해 밤낮으로 뛰어

방민하 화성동부경찰서 경장

 

 

북적거리는 궐동파출소. 그 중 빛나는 눈으로 상부의 지시를 경청하는 사람이 있다. 화성동부경찰서 소속 방민하 경장이었다. 올해 38세를 맞이하는 그는 두 아이의 엄마였고 한 남자의 부인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방민하 경장은 임용 10년차의 베테랑 경찰이었다. 

 

오산지구대에서 경찰생활을 시작한 그. 발령 당시 여성 경찰은 많지 않은 수였다고 말한다. 파출소가 많지 않던 당시 하루 신고 건수는 100여건에 달했고, 이러한 환경에서 방민하 경장은 경찰로서의 자질과 경험을 축척했다. 

 

“발령 초기에 무장한 강도를 검거한 적이 있다” 여성 경찰임에도 불구하고 남성 경찰에 못지않은 활약을 펼쳐온 방민하 경장은 10여년의 경찰 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현장에서의 활약이라고 말한다. 마치 태생부터 경찰이었던 듯 당찬 모습이었다.

 

사실 방민하 경장이 처음부터 경찰의 꿈을 꿨던 것은 아니었다. 교직에 뜻을 갖고 있던 그는 사범대에 들어가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피는 물보다 진했던 것일까? 경찰로 근무하는 아버지의 영향아래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고, 결국 방민하 경장은 자랑스러운 아버지의 후배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임용 후 그는 선배 경찰로 근무하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됐고, 그렇게 시민들을 수호하는 경찰 가족이 탄생하게 됐다.

 

방민하 경장은 경찰 생활에서 용의자의 자백을 받아낼 때 가장 큰 쾌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범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면 가장 앞장서 달려 나가는 그 다운 말이었다. 

 

방민하 경장은 “가끔씩 민원 상담에서 자신의 뜻을 오해하고 불같이 화내는 이들에게 서운함을 느끼기도 한다”며 “하지만 어려운 이들을 도우면 다시 힘이 난다”고 밝은 표정을 지어 보인다.

 

물론 그에게도 경찰 생활의 위기가 있었다. 한 남자의 부인이 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현장과 떨어져 있던 시간들이었다. “다시 돌아가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는 방민하 경장. 그의 기우였던 것일까? 다시 복귀한 방민하 경장에게 동료들은 손을 내밀어 줬고 어색하게 느껴졌던 현장은 다시 그의 안방처럼 편안한 곳이 됐다. 

 

최근 들어 몸이 불편한 큰 아이를 위해 사회복지까지 공부하고 있다는 방민하 경장. 자신의 아이뿐 아니라 다른 어려운 이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항상 약자에 편에 서있고 싶다는 방민하 경장은 여성 경찰은 대부분 50세에 정년을 맞이하지만 60세까지 어려운 이들을 위해 힘쓰고 싶다는 열의를 보인다.

 

민중의 지팡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방민하 경장. 그가 있기에 화성·오산 시민들은 오늘도 안전한 하루를 보낸다.

 

 

 

다이아몬드공구와 함께한 10년

“항상 새롭고 즐거운 나날이었다”

이명한 이화다이아몬드공업 전자사업부 과장

 

 

이화다이아몬드공업(이하 이화)은 1975년에 설립된 기업으로써 700명 정도의 사원들이 근무하고 있는 강소기업이다.

 

경기도에는 오산시 원동과 화성시 동탄면 방교리에 사업장이 위치하고 있다. 이명한 과장은 방교리에 자리 잡은 이화에서 전자사업부 팀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연구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 그가 이화의 문을 처음 두드린 2005년 1월2일. 약 10년이 지난 지금도 처음 마음과 다르지 않다는 이명한 과장이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교내 취업설명회에서 이화를 처음 접했다고 말한다. 그렇게 인연이 닿아 입사하게 된 회사에서 그가 처음으로 맡은 프로젝트는 레진다이아몬드 휠 제작이었다. “학교에서 배우던 것과는 다른 세계였다” 이명한 과장은 사회의 높은 벽을 첫 프로젝트에서 실감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벽은 이명한 과장에게 새로운 재미를 선사했다.

 

흥미로운 개발과정과 새롭게 습득하는 기술들. 무엇이든 배우기 좋아하는 그였기에 지난 10년은 항상 새롭고 즐거운 나날이었다. 이명한 과장은 “이화는 개발기회가 많이 주어지는 회사다. 10년이라는 긴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던 것은 그 기회 덕분이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이어 그는 “보통 회사는 신입들에게 보조 역할부터 맡긴다”며 “다른 회사와는 달리 스스로 개발하고 연구하는 시스템이 마음에 꼭 들었다”고 이화의 시스템을 자랑했다.  

 

“사람들이 잘 모르기는 하지만 이화는 어떤 산업이든 필요할 수 밖에 없는 공구를 제작하는 회사”라고 말하는 그.

 

실제로 이화는 국내에서 반도체·조선업 등에 꼭 필요한 다이아몬드공구를 만드는 곳 중 업계 1위를 자랑하는 기업이다. 특히 세계 4위라는 걸출한 이력은 이명한 과장을 비롯한 이화 직원들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이명한 과장은 그 자부심과 보람이 가장 많이 느껴질 때는 자신이 담당한 개발 건이 완제품으로 나올 때라고 말한다. 스스로를 천생 엔지니어라고 소개하는 그에게 완제품은 자식 같은 존재로 느껴질 수 밖에 없다. 이명한 과장은 일하는 재미에 푹 빠져 달려온 10년이 보람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앞으로의 10년을 더 기대하고 있다는 그는 “앞으로 만들어 낼 제품과 기술에 대한 기대가 크다”며 눈을 빛냈다.

 

지금보다 더 좋은 엔지니어가 되고 싶다는 이명한 과장. 다이아몬드를 다루는 그는 그보다 더 빛나는 열정을 갖고 있었다. 그의 열정이 10년 이후에도 반짝이길 바라본다.

 

“고객 행복이 나의 행복”

조합원 아버지 아래서 농협사랑 키워

최윤기 태안농협 경제팀 팀장

 

 

63%의 상품을 농산물로 채우고, 산지직송을 통해 저렴한 상품을 고객에게 제공한다. 화성시 능동에 위치한 태안농협 하나로마트는 고객우선주의를 내세운다. 그 선두에는 최윤기 태안농협 경제팀 팀장이 있다.

 

그는 조합원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농협에 입사했다. 안녕동, 진안동, 능동에 위치한 본사 농협까지 세군데 하나로마트에서 지난해 발생한 557억의 수익에 대해 말하는 그의 표정에는 농협에 대한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고객이 만족감을 느낄 때 가장 행복하다” 최윤기 팀장은 농협 내 신용부서에서 9년 동안 근무했다.

 

신용부서에서 일하며 겪었던 일 중 그는 어려운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을 때를 꼽으며 타고난 농협인 다운 모습을 보였다. 고객들이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발로 뛰고 마음으로 뛰는 9년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의 근무처가 신용부서에서 하나로마트로 바뀌었다.

 

하나로마트에서 근무한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미 그의 마인드는 6년차에 가까웠다.

 

지금보다 더 고객들을 만족시키고 싶다는 최윤기 팀장. 농협 내 신용부서에서 9년 동안 갈고닦았던 그의 서비스 정신이 하나로마트에서도 빛나고 있었다. 지난 9년 신용부서에서 일하며 겪었던 일 중 그는 어려운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을 때를 꼽으며 당시도 여전했던 고객 사랑을 드러냈다. 고객의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일하는 원동력이었다고 말하는 최윤기 팀장은 10년차가 된 지금, 이 기분을 하나로마트를 다시 찾는 고객들에게도 느낀다고 말한다. 

 

때문에 고객들이 다시 한 번 찾는 하나로마트를 만들기 위해 서비스와 상품의 질을 상승시킬 방법을 항상 생각한다는 최윤기 팀장. 다른 이들에게는 근무 현장이 농협 내부에서 마트 현장으로 바뀌는 것이 불만일 수 있다. 하지만 최윤기 팀장은 “마트 역시 농협 시스템 중 하나”라며 “이를 모두 경험해 볼 수 있어 기쁘다”고 말한다.

 

그는 현장이든 사무실이든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좋은 장소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더 많은 고객들에게 기쁨과 만족을 전할 수 있어서 좋다는 그는 누가 봐도 서비스를 위해 타고난 사람이었다.

 

올해 입사 10년째를 맞이하는 최윤기 팀장은 앞으로도 오늘 업무를 중시여기며 해당 업무 수행에 부족한 부분들을 채우기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자기개발이 있어야 고객들의 만족도를 채워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행복한 삶이란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삶이라고 말한다. 남들이 행복해야 자신도 행복하다는 최윤기 팀장. 그가 근무하는 태안농협에는 오늘도 행복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다.  

 

 

서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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