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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호 교수의 Leadership Inside 96] 나이팅게일은 간호사를 넘어 시대를 개혁한 리더였다
조영호 아주대학교 명예교수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0/01/02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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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호 아주대학교 명예교수     ©화성신문

플로렌스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은 시대를 거스르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여성으로 태어났으나 ‘여성’으로 살기를 거부했다. 그가 산 19세기는 남성중심 가부장적인 사회였다. 여성은 결혼하여 현모양처로서 가정을 꾸리고 남편을 보필하는 것이 이상이었다. 나이팅게일은 가족의 압력, 사회의 요구에 당당히 맞서면서 끝내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을 유지하며 자신의 일을 해나갔다.

 

나이팅게일은 또한 영국 명문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귀족’으로 살기를 거부했다. 그녀가 ‘아프고 병든 사람을 돌보는 간호사가 되겠다’고 이야기했을 때 그의 부모들은 격렬히 반대했다. 귀족들이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자선 사업’을 통해 하는 것이지 직접 몸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당시 간호사는 비천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가난한 집안 처녀들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직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소리를 따라 살았다. 그가 17세 때 어느 날 ‘신의 계시’를 들었다 한다. “플로렌스! 때가 되면 너를 부르리라. 훗날 가난하고 병든 불쌍한 사람을 위해 일할 때가 올 것이다” 그런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그는 일기에 적었다. 그 말씀을 따라 나이팅게일은 평생 그렇게 살았다.

 

나이팅게일은 간호사가 되기 위해 전문교육을 받고 싶었다. 그러나 당시 그런 교육을 해 주는 데가 마땅히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혼자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의학, 보건, 병원관련 서적과 자료를 닥치는 대로 읽고 공부했다. 이렇게 한 3년 하고 나니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실력자가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실습이었다. 수소문 끝에 그는 독일 카이져스베르트 교회에서 운영하는 봉사기관에서 3개월간 간호훈련을 받았다. 

 

그런 끝에 나이팅게일이 실력 발휘를 할 기회를 얻었다. 지인의 소개로 33세에 런던 여성병원의 원장이 된 것이다. 이 병원은 상류층 여성들을 위해 마련된 20병동의 소규모 병원이었다. 나이팅게일은 간호사를 양성하는 훈련을 해 볼 양으로 이 병원의 경영을 맡았다. 그런데 실제로 병원을 맡아 보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병원 각 층에 온수 공급도 해야 했고, 식사의 질도 개선해야 했으며 부엌에서 각 층으로 음식을 배달할 때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승강기도 설치해야 했다. 이런 살림을 잘 하기 위해서는 회계장부도 재정비해야 했다. 무엇보다 환자에 대한 기록이 제대로 없어 이것도 손보아야 했다.

 

여성병원 원장의 일은 나이팅게일이 ‘신의 계시’를 실천하는 겨우 예고편에 불과했다. 1853년 크림전쟁이 발발했다. 16세기 이래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에 걸쳐 대제국을 수립한 오스만제국(오늘의 터키)은 19세기 들어 그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유럽 열강들은 그 틈을 노려 오스만의 영토를 조금씩 파들어 가고 있었다. 이 때 러시아가 큰 야심을 드러내며 남하하고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일단 오스만을 도와 러시아의 야심을 막아야 했다. 러시아 대륙에서 흑해로 삐져나온 크림반도에서 러시아와 오스만, 영국, 프랑스 연합군과의 대 접전이 벌어진 것이다.

 

크림전쟁에서 부상당해 신음하는 병사들을 위해 간호사들이 필요했다. 나이팅게일이 38명의 간호 원정단을 이끌고 크림반도에 있는 스쿠타리 영국군 병원으로 향했다. 현지사정은 처참했다. 지하에 하수처리가 안 되고, 병실 바로 옆에는 쓰레기들이 쌓여있어 악취가 온종일 풍겨 나왔으며, 쥐, 파리, 지네, 구더기 따위가 창궐했다. 의약품, 침구, 의복, 세면도구, 연료 등을 찾아보기도 힘들었다. 간호사 나이팅게일은 결코 환자 곁에만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그녀가 병원경영 책임자가 되어 이 상황을 개선해야 했다. 

 

그녀는 단지 감성적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전쟁 중 사망한 군인들의 87%가 실상 전쟁과 상관없이 후방에서 불결한 환경으로 인해 ‘감염’으로 사망한 것을 알아냈다. 군에서 감염 환자의 비율은 일반 주민의 2배에 이르기도 했던 것이다. 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 그녀는 영국 왕실을 움직여야 했고, 영국 사회를 변화시켜야 했다.

 

나이팅게일은 현대 간호학의 창시자이고, 현대 간호인들의 우상이고 롤모델이다. 그러나 그녀는 거기서 머물지 않는다. 보건정책자였고, 사회운동가였으며, 시대를 개혁하는 리더이다. 2020년이면 그녀가 탄생한 지 200년이 된다. 그녀의 간호정신과 함께 그녀의 리더십이 되살아났으면 좋겠다. 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에 근무하는 김창희 수간호사가 최근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평전’을 출간했다. 나이팅게일 리더십 전파에 기여하기 바란다.

 

choyho@aj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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