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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신문의 교육 칼럼[우리들의 성장통] 부모사전]
Ep1. 생애 발달 백과사전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1/05/31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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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애림 단대아동발달연구소 소장     ©화성신문

부모사전 : 수용적(受容的) : 어떠한 것을 받아들이는. 또는 그런 것.

 

Story1

모호하고 광범위한 개념이 ‘수용적’, ’수용’ 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용(Acceptance)’과  유사한 것은 ’허용(Permission)’이란 단어와 ‘포용(Inclusion)’이란 단어가 있다. 얼핏 같은 의미라고 할 수도 있지만 다소 차이가 있다. 심리학에서는 API의 순서로 이루어진다고 본다. 

 

그럼 ‘수용(Acceptance)’이란 무엇일까? 수용의 개념을 수용(Taking, 엄밀한 의미의 직접수용), 통제적 수용, 간접수용이란 측면으로 나누어 보는 투자관점과 그 사람을 인정한다는 수용(Acceptance)이란 심리학적 관점으로 비교하면 조금 선명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주어진 과업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절차를 얼마나 쉽게 완수할 수 있는가에 대한 개인의 믿음인 자기효능감(Self-Efficacy)과 관련이 깊은 간접수용을 판단하는 3가지는  침해 정도, 고의성 여부 , 합리적 기대로 이는 수용에 대해 “지극히 중립적이고 일반적인 원칙”으로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간접수용이란 용어는 투자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이지만 자녀 양육관계의 시각으로 적용해보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부모 자녀 간 양육 관계 관점에서의 간접수용을 보면 첫째, 침해정도: 자녀가 영아기를 지나 유아기, 학령기로 자라기 시작하면서 부부의 일상과 부, 모의 개인적인 일상에 어느 정도 희생을 수반하게 된다. 

 

그러나 부모 자녀 간에도 경계선이 필요하다. 경계선을 모호하게 구분지어 선을 넘어오게 되면 가장 기본적인 욕구에 침해를 받게 된다. 

 

실례로 잠을 자거나 식사를 하는 등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 해결에 문제가 되고 이는 부모와 자녀 간의 갈등으로 때론 부부간의 갈등으로 연결된다. 

 

둘째, 고의성 여부: 부모가 자녀에게 고의적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또는 버릇이 없어서, 말을 안들어서, 기다리지 못해서 등 여러가지 이유로 고의적으로 부모는 자녀에게 자녀는 부모에게 상처를 준다. 

 

원하는 놀잇감을 갖고 싶은 아이의 욕구와 달리 떼쓰는 자녀의 모습에 불편하고 화가 난 부모는 고의적으로 처벌 또는 훈계를 한다. 

 

때론 집 안에서 때론 외부인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그러면서 서로 내적 갈등이 생기고 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쌓이고 쌓여 총체적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셋째, 합리적 기대: 자녀를 양육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조건부 합의를 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면 숙제를 다하면 게임을 할 수 있게 해 준다거나 책을 읽으면 TV를 보게 해 준다는 등의 것들이다. 

 

자녀들은 자녀들대로 부모들은 부모 나름대로 꽤나 합리적으로 협의를 보았다고 하지만 서로에 대한 기대에 못 미치게 될 경우 각자의 방법대로 욕구를 표출한다. 

 

서로의 입장만 고수하게 되어 갈등이 증폭이 되거나 표출이 되어 일상생활에 여러면의 불편함과 어려움이 생기면 중립적인 조율을 위해 전문가나 주변의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게 된다.    

 

이와 같이 크게 전달하는 의미가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부모가 되면 자녀와 대화도 많이 하고 유연하고 포용적으로 자녀를 양육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또는 부부간에 다짐을 한다. 그러나 자녀가 커가면서 실상은 그 반대로 나가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 같다. 

 

자녀를 양육하다보면 부부간에 부모-자녀 간에 시부모님이나 친정부모님과 자녀양육의 문제로 시시비비를 가리고자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 해진다. 나 역시 자녀를 키우면서 겪었던 것 들이다.

 

오랜기간 많은 부모들과 자녀문제로 상담을 하다보면 발달적 어려움으로  많은 자녀와의 의사소통이 어려운 경우조차도 수용과 간접수용의 경계가 모호해지면 발생되는 여러가지 양육의 어려움과 난점들은 대체적으로 대화방식에 그 해답이 있었다.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는 발달장애 아동이나 청소년들도 표현이 어렵고 서툴지만 오랜기간 부모와 생활하다보면 눈칫밥이란 수용적 이해력이 발달하게 된다. 

 

그들 역시 부모의 대화방식에 따라 본인의 요구와 욕구를 서로 다르게 표현한다. 

 

통념상 많은 부모들의 대화방식에는 2가지의 방식이 있다. 하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며 자녀를 설득하고 논리적으로 풀어가려는 이해에서 비롯되는 학자의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경청하고 자녀의 말에 공감하고 리액션하며 함께 하려는 납득과 이해의 수용에서 비롯되는 광대의 방식이다. 

 

물론 자녀를 양육하며 우리는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때도 있고 논리로 설득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부모니까 옳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부모 자신도 항상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더 수용적으로 대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우리는 학자의 방식으로 대화를 하는 지 광대의 방식으로 대화를 하는지 알고 있을까? 

 

자녀가 자람에 따라 광대의 방식으로 대화를 해야 지혜로운 부모로 성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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