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 기고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화성신문의 전문가 칼럼 화성춘추 (華城春秋) 128]
대한민국호의 Captain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1/12/13 [08:48]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 이찬석협성대학교 교수     ©화성신문

‘Captain’이라는 말은 1989년에 제작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에서 키팅(John Keating) 선생을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한다. 키팅은 전통(Tradition), 명예(Honor), 규율(Discipline), 탁월(Excellence)이라는 4가지 덕목을 중심으로 하는 웰튼 아카데미(Welton Academy)에 영어 선생으로 부임하여 학생들에게 자신을 “O Captain, My Captain”으로 불러도 좋다고 말한다. 고집스럽게 전통과 명예를 고수하는 웰튼 아카데미에 키팅은 휘파람을 불면서 등장하고, 규율을 덕목으로 하는 웰튼 아카데미의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교탁에 올라서 보라고 하면서 파격적인 선생으로 등장한다.

 

영어 선생 키팅은 이렇게 외친다. “현재를 즐겨라, 너희 인생을 특별하게 만들어라.” 키팅 선생의 눈에 학생들이 학교가 요구하는 엄격한 규율에 순종하면서 강요된 현재를 묵묵히 수용하기 때문에 모든 학생이 자신의 고유성을 상실하고 획일화되어 가고 있다. 학교의 당국자들과 학부모들도 학생들 미래의 삶을 위하여 현재의 삶을 희생하기를 바라고 있다. 학생들의 고유성과 주체성은 미래로 유보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느끼고 발견하고 즐기며 키워가야 하는 소중한 보석이다. 그러므로 키팅 선생은 학생들이 현재를 향유하고 자신의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 보라고 요구한다. 

 

키팅 선생은 웰튼 아카데미라는 학교와 학생들을 바꾸기 위하여 학교의 구조보다는 사람, 학생들, 학생들의 변화/깨달음에 집중한다. 키팅은 학교를 바꾸기 위하여 학교의 중심(학교의 교사들과 학부모들)보다는 학교의 주변인 학생(실제로는 학교의 주인은 학생인데)들에 집중한다. 변화와 개혁을 도모하는 많은 사람은 주변의 변화보다는 중심의 변화를 꿈꾸고 기대한다. 정책을 결정하는 구조에 몸을 담고 있으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의 생각이 바뀌어야 개혁은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주변의 변혁보다는 중심의 변혁을 꿈꾼다.

 

그러나 키팅은 주변으로 밀려난 학생들의 변화/깨달음에 힘을 쏟는다. 키팅 선생은 결국에 웰튼 아카데미를 떠나게 되어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키팅 선생이 학교를 떠나는 순간, 의자에 앉아 있던 학생들은 책상 위로 올라선다. 학생들의 이러한 행동은 엄격한 규율을 강조하는 학교가 아니라 Captain 키팅을 선택하는 파격적인 저항이며, 맹목적으로 순종하는 삶에서 주체적인 삶으로의 전환, 미래를 위하여 현재를 희생하는 기우뚱한 삶에서 현재의 삶과 미래의 삶의 균형을 조율하는 삶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학생들이 자신의 책상 위에 올라가는 모습에서 키팅은 변화와 개혁의 Captain으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중심은 그대로인지 모르지만, 주변은 변화되었고 개혁되었다. 

 

르네 마그리트(Rene Francois Ghislain Magritte)의 그림 <개인적 가치(Personal Values)>는 주변과 중심에 대한 우리들의 고정관념을 해체한다. 침실에서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침대와 옷장이므로 침실에 대한 그림에서 침대와 옷장이 중심을 차지하고 유리컵이나 머리빗은 작은 모습으로 주변으로 밀려 나가는 것이 일반적인 그림이다. 그러나 마그리트의 그림 <개인적 가치>에서 작아야 할 유리컵이 가장 큰 모습으로 중앙에 자리 잡고 있고, 머리빗은 침대보다 더 큰 모습으로 침대를 누르고 있고, 화장 솔은 옷장을 압도하면서 자신의 크기와 무게로 옷장을 압도하고 있다. 크고 작음과 중심과 주변은 객관적으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인간의 마음과 주관에 의하여 달라질 수 있음을 마그리트는 <개인적 가치>라는 그림을 통하여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침실을 소품의 공간으로 만들어 버리는 유리컵, 침대를 장난감으로 전락시키는 머리빗, 옷장을 받침대로 둔갑시키는 화장 솔은 거실의 주변으로 머무르지 않고 중심이 되어 우뚝 일어선다.

 

지도자/리더를 생각하면서 그 공동체의 중심을 개혁할 수 있는 ‘영웅 찾기’에 나서거나 ‘영웅 만들기’에 골몰한다. 진정한 captain은 거목이 되려는 사람이 아니라 숲이 되려는 사람이다. 타자를 짓밟고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영웅은 거목이 되어 우뚝 솟아나 있지만, 진정한 captain은 주변화된(marginalized) 사람들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우뚝 세우면서 숲이 되어 간다. 포스트모던 한국을 바꾸었던 촛불혁명은 거목의 사건이 아니라 숲의 사건이다. 촛불혁명의 주체/주인공은 누구인가? 특정인을 영웅으로 만드는 혁명이 아니고 온 국민이 혁명의 주체로 일어서 한반도를 바꾸어 놓았던 숲의 사건이다. 봉건적 시대의 혼란스러웠던 난세에는 거목과 같은 영웅 찾기/만들기를 시도하였지만, 포스트모던 시대에서는 숲이 되어 가는 진정한 captain을 찾고 선택하여야 한다.

 

Carpe Diem을 강조하였던 키팅은 학생들에게 계속하여 이렇게 말한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 걸음을 걸어라. 나는 독특하다는 것을 믿어라. 누구나 몰려가는 줄에 설 필요는 없다. 자신만의 걸음으로 자기 길을 가거라. 바보 같은 사람들이 뭐라 비웃든지 간에….” 영웅은 자기 자신과 자기의 사람들을 우뚝 세우려고 하지만, 진정한 Captain은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들을 주체로 세우면서 자기 자신을 비우고 무대에서 사라진다. 나사렛 예수처럼. 

 

chanseok21@hanmail.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화성신문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인기기사목록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