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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 시인칼럼 5]옥란재에서 배우다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3/04/17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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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택수 노작홍사용문학관 관장     ©화성신문

코로나 19가 해제되면 마스크를 벗을 수 있으리란 기대는 순진한 생각이었다. 북반구 중심의 지구 시스템이 활동을 재개하면서 한동안 뜸했던 미세먼지가 다시 봄 하늘을 뒤덮기 시작했다. 마스크는 이제 일상이 되어서 인간이 진화단계의 끝에 선택한 호흡기관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어류가 아가미 호흡을 하듯이 마스크를 썼다 벗을 때마다 인류가 이룩한 문명의 발전상이 결국은 퇴화의 길이었나 하는 자괴감을 숨길 수 없다.

 

미세먼지는 눈으로 식별이 가능키나 하지 초미세먼지는 하늘마저 믿을 수 없게 한다. 투명하게 푸른 하늘에 각종 병을 유발하는 악성 먼지가 매복해 있다는 사실만으로 구름과 바람과 대기의 흐름에 대한 불신을 떨쳐버리기가 힘들다. 새들은 오염된 하늘을 어떻게 날아다니나. 지구와 나의 관계가 깨어지면서 기이한 몽상들이 불안과 우울증을 일으키며 현실화된다. 

 

가령, 이런 것이다. 호흡기를 타고 빨려 들어온 먼지가 혈액 속을 날벌레들의 사체처럼 둥둥 떠다닌다. 후각세포를 거쳐 곧장 뇌에 침입한 미세먼지는 조금만 스쳐도 상처가 나는 지지세포에 염증을 일으키면서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 호르몬 분비를 심각하게 저하시킨다. 뿌옇게 흐려진 대기처럼 심신에도 우울증이 생겨난다. 호흡기 계통의 열악한 환경에 노출된 계층들은 ‘하우스푸어’가 아니라 ‘산소푸어’로 추락할 수도 있다는 공포감에 매일같이 야근을 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캐나다 로키산맥 산중의 신선한 공기를 담은 공기캔과 농축 산소캔이 선물 품목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공기청정기와 삼림욕기로는 만족하지 못한 채 틈만 나면 맑은 하늘을 찾아 떠나는 여행 패기지 상품이 출시될 것이다. 몇 해 전 광화문에 등장한 방독면 퍼포먼스가 현실이 되지 말란 법도 없겠다. 예전 같으면 공상과학 소설에나 나올 디스토피아가 목전으로 다가왔다.

 

식목일 부근에 우연히 서신면의 옥란재에 다녀왔다. 짬날 때마다 관내의 장소 답사를 다니던 버릇이 그날은 예정에 없던 길로 들어서면서 내 삶에 잊을 수 없는 지도 하나를 선물했다. 찾아오는 손님은 마다하지 않지만 현시적인 노출을 극히 꺼려하는 옥란재는 한 세기 이상 주인이 대를 이어 가꿔온 나무들로 마치 비밀의 숲과 같은 아늑한 장원이었다. 식목에도 상상력과 실험정신을 발휘해서 중부 이남의 바닷가에서나 자라는 피라칸사스 같은 희귀한 나무와 봄밤을 운치 있게 하는 진한 향이 으뜸인 일본 목련 그리고 메타세쿼이어 숲이 울창했다. 정원의 돌 하나하나에도 주인의 숨결이 닿아 있어서 사물에 정신을 담고자 하는 심미적 태도가 아득하게 펼쳐졌다. 

 

전통의 원림문화를 어떻게 복고창신할 것인지 여러 생각을 갖게 하는 옥란재는 3대를 이어온 남양 홍씨 문중의 땀과 영혼이 결합된 총체로서 결코 환금화될 수 없는 가치로 청신한 기운을 뿜어낸다. 숲 어딘가에 자신의 묘비를 손수 준비해 놓은 주인 홍사종 선생은 그날도 나무를 심고 있었다. 내게는 그것이 죽음을 명상하는 자의 경이로운 생명의지처럼 보였다. 나무에게 무릎을 꿇는 그를 따라 나도 나무를 경배하고 싶었다.   

 

옥란재를 다녀온 뒤다. 마스크를 낀 채 직선거리로 시간을 단축해서 갈 수 있는 길을 부러 돌아가는 반석산 숲을 선택해서 일터까지 출퇴근을 한다. 숲에선 호흡이 한결 수월해진다. 숲이 마스크인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옥란재가 아닐까. 숲의 스승에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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