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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신문의 전문가 칼럼 화성춘추 (華城春秋)194]
‘범죄도시3’를 안 보고 쓰는 단평: 강한 정의와 약한 불의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3/06/12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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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대 근대한국학연구소 HK연구 교수   ©화성신문

‘범죄도시3’가 개봉 6일 만에 관객수 500만 명을 돌파했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이 칼럼이 게재될 즈음에는 천만 소식이 들릴지도 모르겠다. ‘범죄도시’의 이전 시리즈에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나로서는 세 번째 작품마저도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다소 의아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괴물’ 형사 마석도의 ‘주먹질’에 열광하는 관객들의 심리와 욕망의 사회적 성격에 대해서는 짧게라도 다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범죄도시’는 한국형 슈퍼 히어로 무비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마동석 배우가 열연하는 마석도라는 캐릭터는 미국의 민속 영웅이자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할 수 있는 슈퍼맨이나 배트맨 못지않은 압도적인 힘을 갖고 있다. 상대가 아무리 악독하고 강고해 보여도, 마석도 앞에서는 초라해질 따름이다. 한순간의 타격조차 쉽게 허용하지 않는 절대적인 그의 폭력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옹호된다. 폭력의 주체는 항시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해가며 폭력을 반복 행사하기 마련인데, 이때 그 정당화의 기제로 정의가 동원될 때, 법의 가치와 윤리의식은 소실될 수밖에 없다. 도시라는 공간 혹은 도시적 삶 자체가 이미 범죄로 얼룩져버렸다는 판단을 전제로 할 때만 허용 가능한 그런 ‘합법적 폭력’이 있다는 것이다. ‘영웅’은 시대에 대한 바로 그러한 비관에서만 출현한다. ‘범죄도시’의 흥행은 정의와 불의 간의 균형과 긴장이 무너져버렸다는 사회적 의식의 확산이 문화적으로 표현된 결과 중 하나로 봐야 할 것이다. 

 

물론 ‘범죄도시’와 같은 ‘먼치킨’류의 서사가 각광을 받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때 ‘먼치킨’류라는 것은 극도로 강한 주인공이 나오는 서사물을 통칭하는 은어라 할 수 있다. 웹툰이나 웹소설을 비롯한 웹장르물에서는 어지간한 신 따위는 비웃을 정도로 막강한 ‘세계관 최강자’를 내세운 서사물이 이미 오랫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먼치킨류에서는 주인공이 그토록 강한 능력을 얻기까지 마주할 수밖에 없었을 시련이나 고통, 혹독한 훈련 과정 같은 것들은 거의 묘사되지 않는다. 주인공의 무력(武力)이 중요한 장르임에도 정작 해당 인물이 그러한 힘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서사적으로 그렇게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복수의 결과에만 집중하고 원한의 이유는 생략하는 서사 형태도 대체로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겠다. ‘범죄도시’의 마석도 역시, 그저 오늘의 불의를 벌하는 강한 형사로만 등장할 뿐, 그의 과거는 전혀 그려지지 않는다. 관객도 마찬가지여서 마석도의 주먹에 통쾌함을 느끼면서도 그가 그토록 싸움을 잘 할 수 있게 된 경위 같은 것에는 철저히 무관심한 것이다. 마석도라는 캐릭터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가 행사하는 폭력만을 원하는 도착적 욕망이 만연해진 시대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범죄도시’의 성공이 한국 사회에 남긴 질문이란 대략 이런 것 같다.

 

액션과 무협과 같은 장르에서는 악당의 역할과 비중이 상당히 중요하기 마련이다. 주인공과 악당 간의 균형 잡힌 교착이 서사적인 긴장을 추동하고, 그러한 긴장으로부터 촉발된 서스펜스가 대중을 매혹해온 오랜 역사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범죄도시’를 비롯한 먼치킨류의 서사에서 악당이 설 자리가 점차 좁아질 거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범죄도시’만 해도 1편의 빌런이었던 ‘장첸’에 비하면 2편의 ‘강해상’을 거쳐, 3편의 악당은 이름조차 언급이 잘 안되지 않는가. 영화 속 세상에서 상연되고 있는 ‘강한 정의’와 ‘약한 불의’에 대한 환상이 현실사회와 얼마나 헤아릴 수 없는 간극으로 벌어지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비참하기까지 하다. 어쩌면 우리는 ‘강한 정의’와 ‘약한 불의’라는 환상을 문화적인 상품으로 소비하고, 그러한 소비의 향락 속에서 정반대의 현실은 애써 외면하거나 망각하는 삶에 익숙해져 버린 것은 아닌가 한다. 이런 삶과 향유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withnove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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