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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원칙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3/07/24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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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 민 연세대 근대한국학연구소 HK연구 교수     ©화성신문

문화에 관한 오해들이 있다. 문화의 정의가 너무 폭넓기 때문이다. 사전적으로 문화는 사회 구성원들의 행동 양식이나 생활 양식 전반을 의미하며 언어와 풍습, 종교, 학문, 예술, 제도 따위를 모두 포괄한다. 그러다 보니 정치나 경제 활동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인간 행위가 문화라는 이름으로 수행되거나 정당화되기도 한다. 하지만 문화에도 최소한의 원칙이란 게 있다. 그것이 지역 문화든 대중문화든 모두 마찬가지이다. 문화의 원칙을 방기한 채 문화활동을 영위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문화의 최소 원칙이란 무엇인가?

 

문화의 정의가 폭넓다는 것은 여러 개의 정의가 있다는 뜻이 아니라 문화라는 개념이 역사적인 조건에 따라 변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문화 개념의 근본적 모호성과 다의성을 처음부터 인정하고, 개념의 역사성을 추인해 볼 필요가 있다. 문화연구의 선구자 레이먼드 윌리엄스에 의하면, 문화는 문명(civilization)개념과 대립하면서 발전했는데, 문명이 물질적·제도적 성취와 행위표준을 의미했다면, 문화는 인간의 내면적 도덕성을 지칭했다고 한다. 이처럼 문화라는 개념은 인간의 고결한 정신적 가치와 행위를 의미하면서도, 역사적으로는 세계의 지배적인 질서와 가치관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지녀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화는 역사적 조건에 따라 상이하게 구성되지만, 그 안에는 고유한 비판 정신이 최소 원칙으로 내재해 왔다는 것이다. 문화는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단순히 반영하지 않는다. 오히려 문화는 지배적 이데올로기의 한계를 드러내며, 인간 행위의 변혁을 추동한다. 예컨대 최근 문화사업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대중문화의 경우도, 그것이 대중을 기만하고 반동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지만(아도르노), 지배(고급) 문화의 분열을 드러내며, 현실 인식의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 

 

문화 개념에 내재한 비판적 기능은 한국의 근대사를 통해서도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식민시기 항일문예운동이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시대를 거쳐, 독재 타도와 민주화 실현을 모색했던 수많은 문화적 기념비들을 기억할 것이다. 

 

화성도 마찬가지이다. 발안이 문화적으로 기억될 필요가 있는 이유도 일제에 항거한 3·1운동의 지역적 거점이었기 때문이며, 매향리가 문화와 예술의 산실이 될 수 있는 이유 역시, 미군과 국가폭력에 대한 저항의 정신이 깃든 장소이기 때문이다.

 

문화의 역량은 법과 원칙의 준수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지배에 대한 저항에서 싹터왔다. 이는 체제에 대한 비난을 문화라는 이유로 무조건 수용하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문화에 내재한 비판적 기능을 보호함으로써, 정부와 지자체는 국가/지역과 시민의 관계를 부여하는 가치와 규범, 권위를 정당하게 확보하라는 것이다. 행정·입법·사법의 상호관계나, 선거제도, 정당 체제 등의 정통성에 입각하면서도, 시민사회의 요구를 정책으로 출력할 수 있는 자립적인 소통체계를 보장해야 한다. 법이나 제도, 사회적 규범에 대한 대중의 공감은 문화에 고유한 비판 정신으로부터 비로소 수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의 정수는 근본적으로 불온한 것이다. 문화에 내재한 비판적 기능을 소거한 채, 문화의 발전을 모색할 수는 없다. 

 

체제 순응의 표현이 아름다울 수는 있어도, 문화의 이념적 발현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창조도 마찬가지이다. 창조란 기성의 질서에 대한 파괴적 행위에 다름 아니다. 문화의 불온한 창조성이 발현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문화의 발전은 필요한 제도적인 지원과 더불어, 제도화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자립성을 인정해 줄 때 가능하다. 관리와 통제에 불응하는 문화적 활기를 인정해야 한다. 사실 이는 매우 원론적인 이야기이다. 문화의 이러한 최소 원칙을 방기한 채, 문화라는 이름을 오용하며 힘 있는 사람들의 눈치만 보는 행위로부터, 우리는 문화를 보호해야 한다.

 

withnove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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