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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 시인칼럼 8]영감(靈感)이 오는 방식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3/08/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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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택수 노작홍사용문학관 관장     ©화성신문

언어를 학습한다는 것은 국민국가의 네트워크 속에서 삶을 등기하고 적응시키는 사회적 변화 과정에의 순응을 뜻한다. 사회적 협약에 따라 언어 사용 방식이 일체화되면 의사소통 규칙만 통일되는 것이 아니라 지배 질서의 헤게모니와 경제 시스템까지 내면화된다. 시는 이 같은 국민국가 시스템으로부터의 간단없는 탈주라고 할 수 있다. 가령, 불은 뜨겁고 얼음은 차가운데 그 이분법을 일시에 해체하듯 ‘뜨거운 얼음’같은 이미지로 논리의 연결을 불연속적으로 점프하면서 안정적이고 표준적인 통사 규율의 지배를 정지시킨다.

 

자동화된 정보체계에 브레이크를 거는 언어활동으로서의 시는 발상 자체가 경이로운 경우가 많다. “오리 모가지는/ 湖水를 감는다// 오리 모가지는/ 자꾸 간지러워.”(‘湖水 2’전문)라고 노래한 정지용의 시는 호수의 상투적 인식을 뛰어넘는 관찰을 통해 호수를 실패처럼 감고 있는 오리라는 경이로운 이미지와 간지러움이라는 낯선 지각을 끌어낸다. 오리 목에 감긴 호수 물결이 독자의 목덜미까지 서늘하게 밀려오는 것 같지 않은가.

 

신선한 착상력을 지닌 시들의 공통점은 뛰어난 발상 자체를 단순히 아이디어의 차원으로 남겨두지 않고 진동케 하는 독자적인 영혼의 울림이 있다는 것이다. 이 영혼의 울림, 말하자면 영감(inspiration)은 어떻게 오는가. “귀신을 공경하면서도 멀리하면 안다고 할 수 있겠다.”(논어, ‘옹아편’) 앎이 무엇이냐고 묻는 제자 번지의 질문에 공자가 답한 것인데 작가가 영감을 대하는 태도가 이와 같다. 언제 올지 모르는 영감을 태평하게 기다리고 있기보다  영감을 공경하기 위해 멀리하는 거리두기의 역설을 작가는 성실하게 살아내야 한다. 어떻게 거리두기를 할 것인가. ‘조야한 말 혹은 몸짓이나 마음에서 갑자기 영적인 현시가 나타나는 것, 그것은 예술가들 자신에게 있어 가장 섬세하고 덧없는 순간들이기 때문에 아주 조심스럽게 기록하는 것이 예술가들이 해야 할 일이다.’ 조이스 캐럴 오츠의 ‘작가의 신념’에 나오는 글인데 그녀에 따르면 제임스 조이스는 습작하는 과정 내내 대략 70개의 영감을 기록했다. 그중 40개 정도가 ‘더블린 사람들’, ‘율리시즈’ 같은 소설의 재료가 됐다. 요컨대, 장인의 단계에 충실해야 영감을 품게 된다는 말이다.

 

D.H. 로렌스는 그래서 무엇을 쓰고 있는지 채 파악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기꺼이 한 작품 당 수많은 초고를 쓰길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무지개’를 쓸 때는 천 페이지 정도를 폐기해 버렸다고 한다. 착상의 완만한 진행과 뒤죽박죽으로 얽힌 얼개를 언어화하는 가운데 더할 것은 더하고 버릴 것은 버리는 지난한 작업 속에서 하나의 작품이 완성됐던 것이다. 이런 사례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작품이 사유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는 의미나 주제가 분명하지 않은 가운데 발화되는 우연성을 언어화하는 과정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사유가 착상을 개진할 때는 대체로 훈련받은 사고체계의 범주에 머물기 쉬우나 먼저 살아가길 원하는 언어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발상이나 표현이 터져 나오는 경우를 창작 현장에서 빈번하게 목도할 수 있다.

 

파악할 수 있는 의미나 이미지, 주제의 영역과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소리나 미묘한 분위기, 개념화하기 힘든 미세한 어조의 떨림이 함께하는 시 장르는 특히 그렇다. 이해를 넘어서는 울림의 장르로서 시는 생각뿐만이 아니라 언어의 놀이와 유희에 대한 절대 긍정이다.

 

시인이기도 했던 인상파 화가 드가가 생각이나 시상이 부족한 건 아닌데 한 줄의 시도 쓰지 못하고 있다는 푸념을 늘어놓자 말라르메는 이렇게 충고했다. “시는 생각이 아니라 언어로 만드는 거야!”. 시가 어렵다는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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