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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신문의 전문가 칼럼 화성춘추 (華城春秋)206]
건축의 언어, 흉상의 상징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3/09/11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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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 민 연세대 근대한국학연구소 HK연구 교수

건축이론에 관심이 생긴 것은 우연히 반달리즘에 관한 기사를 보고 나서였다. 

 

주지하듯 반달리즘이란 문화유산이나 공공기관 등을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행위를 말한다. 가령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는 우상숭배를 정화한다는 명목으로 세계적인 문화유산인 알누리 대사원이나 시리아 팔미라 유적의 고대 원형 경기장 등을 파괴한 바 있다. 이탈리아의 미래파들은 로마의 문화유산에 실제 반달을 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중국의 문화대혁명도 반달리즘의 대표 경우라 할 수 있겠다. 한국의 사례로는 조선의 ‘숭유억불’로 절이나 경주 등지의 불상을 파괴한 경우를 꼽을 수 있겠고, 일제의 석굴암 훼손도 일종의 반달리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달리즘이라 불릴 만한 파괴 행위는 문화유산-건축물의 상징성을 훼손함으로써 자신들의 목적의식을 선전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건축물 자체가 목표라기보다는 대상이 함의하고 있는 재현과 그 상징들을 파괴하려는 것이다. 

 

이때 건축이란 건물과는 조금 구분되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건물이 단지 토지에 정착한 구조물이라면, 건축은 순전히 실용적인 관심사로부터 벗어난 구축, 혹은 그것에 관한 미학과 상징을 포함하는 개념인 것이다. 따라서 건축은 건물과 달리 항상 그 자체가 아닌 무엇인가를 재현해 온 것이 된다. 이는 반달리즘의 주요 타깃이 되는 문화유산에만 해당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건축은 일종의 담론이자 텍스트여서 그것이 형성되기까지 맺는 사회적 배경 혹은 맥락 사이의 관계가 만들어 내는 산물들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건축은 공간적인 관계의 권력-정치학이나, 통치성, 이데올로기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으며, 사회적으로 해석된 인간의 몸, 생태학, 재현과 표상, 미디어, 도시문화, 테크놀로지, 노동 등의 토픽들과 매우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1968년 이후의 건축이론’의 편저자 마이클 헤이스는 건축이론의 유효성을 매개적 기능에서 찾는다. “건축이론의 매개적 기능은 단일하고도 다양한, 그리고 서로 다르게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되던 개별적인 현실 사이의 주목받지 못했던 관련성들과 공통성들을 드러내 줄 수 있는 해석의 방법 자체를 제공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사회적 담론이자 텍스트로서의 건축은 우선 지배의 목적과 기술이라는 하나의 기능으로서 사유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푸코는 (같은 책에서) “18세기 이후로 인간에 대한 지배의 기술로서의 정치를 다룬 모든 논의들은 도시 계획에 관한, 집합적인 시설들에 관한, 위생에 관한, 그리고 개별적인 건축에 관한 독립된 장(章)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건축을 바라보는 푸코의 이런 사유 자체는 이제는 좀 익숙한 편이다. 그보단 건축을 사유한다는 것이 담론의 구조를 이해하는 원천이자 시스템의 언어를 확보케 하는 것이라는 논의가 더 흥미로워 보인다. 

 

드니 홀리에는 말한다. “건축가의 담론은 언어학자의 담론 앞에서 미리 형성된 경우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언어적인 분석이 건축적인 어휘의 유입에 의해 지배되는 것으로서 생각되어야 한다.” ‘구조’라는 용어가 그 자체로 결코 증거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건축의 어휘에 기대지 않고서 하나의 시스템을 묘사하는 방법은 없다. “구조가 읽어낼 수 있는 일반적인 형태를 규정할 때, 건축적인 그리드에 종속되지 않는다면 어떤 것도 결코 독해 가능한 것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건축은 원구조, 즉 시스템들의 시스템인 것이다.

 

건축은 건물로 환원될 수 없는 담론적 질서를 구성한다. 이때 담론적 질서란 세상의 건축물은 일종의 사회적 상징이자, 문화적 언어이고, 의미의 재현이라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최근 불거지고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문제도 학문적이라거나 역사적인 쟁점이 아니라 다분히 소모적인 정치적 사안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파악해야 할 것이다. 독립투사의 흉상이 육사라는 상징적 건축 공간의 정통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발상의 저의가 무엇이겠는가. 때아닌 이념 갈등을 부추기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부디 역사를 배반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withnove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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