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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신문의 전문가 칼럼 화성춘추 (華城春秋)230]
4월은 정녕 잔인한 달인가?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4/04/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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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원 청운대학교 문화예술경영마이스학과 외래교수     ©화성신문

4월이다. 매화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가 피고 진다.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 봄을 피워내는 4월은 아름답다. 사람들도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은 자유롭고 평화롭다. 텃밭, 내 땅에 씨를 뿌리는 농부도 태평하다.

 

언제까지도 깨어날 것 같지 않던 눈 덮인 동토, 그 대지에 어언 파란 새싹이 돋고 꽃들이 앞다투어 피고 있다. 아름답고 신비롭다. 광경은 참으로 평화롭다. 우리가 보는 지금의 4월이다.

 

때로는 전염병이 전 세계를 돌아 공포의 도가니가 되기도 하였고, 때로는 전쟁으로 공포와 죽음의 4월이 되기도 하였다.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웠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젊은 생명을 불사르기도 하였다. 

 

산과 들에 봄은 왔으나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지배의 억압에 고통받던 시절, 시인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하였다. 독립운동가인 그는 강점기 봄의 심경을 시에 담았다.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중략)/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봄은 왔으나 봄이 아니다. 봄은 왔으나 들엔 여전히 어둡고 차가운 지배의 억압이 있을 뿐이다. 잃어버린 봄, 빼앗긴 봄이다. 동시대에 태어나 독립운동을 하던 소설가 현진건과 이상화는 되찾은 들에 봄을 맞이하지 못하고 길지 않은 생을 불가사의하게도 4월 25일, 같은 날 서울과 대구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4월은 정녕 잔인한 달인가? T.S엘리엇은 433행이나 되는 장시 ‘황무지’의 첫 구절에서 4월을 노래한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섞으며/ 봄비로 생기 없는 뿌리를 깨운다. (이하 생략)

 

엘리엇의 이 시는 1922년에 발표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처참하고 황폐한 도시, 공포와 두려움이 채 가시지 않은 사람들의 안타까운 영혼을 그리고 있지는 않은지 싶다. 같은 시기 우리는 일제의 강점기였다.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같은 맥락의 아픔이 담겨있다. 

 

4월은 우리의 역사에서도 참으로 잔인한 달이다. 근대에서 최근까지 우리에게 4월의 역사는 피와 죽음의 사건들이 있다. 1948년 제주 4·3사건, 1960년 4·19혁명, 2014년 세월호 참사 등 4월의 비극은 잔인한 4월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이 사람에게 저지른 일이고, 태만과 무지함으로 수없는 사람을 스러지게 하고, 수많은 사람의 가슴에 되돌릴 수 없는 한을 맺히게 했다. 잔인한 4월이다.

 

어둡고 차가운 땅에서 긴 겨울을 나며 봄을 기다려 온 뿌리가 언 땅을 녹이고 비집어 싹을 트고 꽃을 피우는 이름다운 이 4월의 인간사는 또 복잡하다. 의사들은 사표를 내고, 환자는 병원을 찾아 전전하고, 버스는 차고에 멈추고, 서로가 서로에게 돌을 던지며 나만 잘나고 나만 옳으며, 내가 최고라고 나를 국회로 보내달라고 목줄을 세우고 있다.

 

4월이 더 이상 잔인한 달이 아니길, 4월은 아름답고, 자유스러우며, 평화롭고 희망의 달이기를 국민 모두는 바란다.  

 

contlee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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