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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과 삶]송산면 쌍정2리 대정마을
'각성받이' 어우러져 함께사는 마을
 
정현주 기자 기사입력 :  2009/02/16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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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어디를 가든 크고 작은 바위나 오래된 나무 한 그루에도 전설과 설화가 전해지듯 82가구가 모여 사는 송산면 쌍정2리도 마을의 전설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우물 두 개가 있어 쌍정리라 부르는 이 마을은 가수 조용필과 김부자의 고향이기도 하다. 시화호 간척 사업으로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던 옛 모습은 사라지고 넓은 논으로 지형이 변했다. 세월 따라 마을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바뀌었어도 여전히 서로를 보듬으며 오늘을 살고 있다.

   
▲ 대정마을 전경
#마을 명칭의 유래
화성시 서쪽 끝머리 서해 바닷가에 접해 있는 쌍정리는 마을에 덕우물과 한우물이라는 두 곳의 우물이 있어 쌍정리(雙井里)라 칭한다. 마을의 중심은 대정마을이다.

덕우물(德井洞)지형이 새우등과 같이 생겼는데 원래는 물이 없었다. 사람들이 새우등 너머에 우물을 판 뒤 물을 풍족하게 얻을 수 있어 덕을 주는 우물이라 하여 덕정리(德井里)라 부르게 됐다.

한우물이라고도 불리는 대정동(大井洞)은 마을 중심부에 큰 우물이 있어 주민들이 이 물을 식수뿐만 아니라 농업용수로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물이 풍부했다. 마을 이름을 큰우물이라는 뜻이 담긴 한우물 또는 대정동(大井洞)이라 부르고 있다.

서로 다른 성을 가진 18개 각성받이 마을인 쌍정리에선 특히 양반들이 권세를 부리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80여 년 전 마을 후미에 꼰대집이라 불리는 민경천이라는 양반이 부친상을 당했던 이야기다. 마을 주민들이 상여를 메고 가는데 민씨가 “상여를 메라. 앉아라. 일어나라” 유세를 떨자 주민들이 상여 메기를 중단하고 “그럼 당신 혼자 묻어라”며 돌아가 버렸다. 그 일이 있은 후 민씨 일가는 일일이 마을 주민들을 찾아 사과를 했다고 한다.

전 송산면장 노수철(82)씨는 “농사짓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마을이라 신분에 대한 의식이 약했고 주민 대부분이 신분이 같기도 했지만 마을의 중심인 우물을 통해 유대감을 형성해 왔다”며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예부터 단합이 잘 됐다”고 전했다.

또한 “3·1운동 발원지도 사강으로 일제가 당시에 빈 교회나 빈 가옥에 불을 질렀는데 제암리의 만행만큼은 아니어서 주민들의 피해는 크지 않았다”며 아픈 역사를 증언해 줬다. 

노수철씨는 “밭농사를 아무리 지어봐야 수익이 너무 적어 묘목을 채취해 쌍정리에 포도를 심기 시작했다”며 쌍정리에서 송산포도의 시작되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쌍정리 사람들은 운동경기에도 능하다. 각종 상을 다 휩쓸어 마을회관에 진열된 트로피가 많았다. 최석형(49) 이장는 “마을회관에 있는 트로피가 너무 많아 다른 곳으로 옮겼는데도 저렇게 많다”며 웃었다. 화성시청 배구팀 임태복 코치도 쌍정리 출신이다.

또한 부녀회장 윤남북(59)씨의 말에 따르면 부녀회는 “회원이 70명인데 단합이 잘된다. 폐품 수집, 경로잔치, 찬조 활동 등 대부분 봉사활동을 하는 것”으로 마을 화합을 위해 일한다.
   
▲ 왼쪽 두번째부터 노수철, 이승억, 한사람 건너 조용대씨.

#우물은 삶의 원천 
우물은 마을의 생명수로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공동체 문화를 형성하는 터전이기도 하며 마을의 크고 작은 정보들이 집중되고 입을 통해 분산돼 여론을 형성하는 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며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장이다. 

노인회장 이승억(72)씨가 마을 풍습을 전해준다. “옛날엔 우물에서 모든 걸 다 했다. 마을 잔치도 하고 여름엔 물놀이, 부녀자들이 모여 빨래를 하고 항상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며 마을의 중심이 우물이었다고 말한다.

전 이장인 김원섭(64)씨는 “지리학상으로 좋은 물이 나는 곳이라 금수(金水)라고 한다. 물이 좋아 그런지 다른 마을보다 사람들 키가 크고 단합이 잘 된다. 가뭄이 없어 농사가 잘 돼 부농들이 많다”며 “지리적인 해택이 큰 마을이라 사람도 건강하다”고 전했다.

화성시 대부분이 그러하듯 쌍정리도 삶의 양식이 변하면서 예외 없이 잃어가는 것들이 존재했다.

가수 조용필의 6촌 형인 조용대(68)씨는 “사람들이 옛날부터 우물을 숭상했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동네 사람 모두 모여 정제를 지냈다”며 “우물을 위한 축제의 규모가 대단했다”고 증언한다. 그러나 “정제를 안 지낸지가 20여년”이며 마을의 중심이 없어진 점을 아쉬워했다.

“지금은 우물에 물이 나오지 않는다. 모두 자가 수도를 설치하고 난 뒤부터 우물이 말랐다. 마을에서 공동 관리를 하면서 일 년에 두 번 청소한다”는 것이 최 이장의 설명이다.

우물터는 돌보지 않아 그 곳에 우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흔적이 없고 논으로 변해 있었다. 다만 다른 곳에 비해 약간의 물기가 남아있을 뿐이다. 세월의 힘에 밀려 사라져가는 모든 것을 붙잡을 수는 없다. 마을의 중심이며 공동체 문화의 터를 이렇게 방치한다는 것이 소중한 가치를 스스로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우물의 복원이 시급함을 느낀다.
  
#미륵보살 혹은 미륵댕이 
   
▲ 이승억씨가 돌미륵에 얽힌 전설을 들려주고 있다.
쌍정리 258번지 대장방죽들에 돌보지 않은 채 방치된 돌미륵(선돌이라고도 한다)이 하나 있다. 사람들은 이를 미륵보살, 미륵바위 혹은 미륵댕이라 부른다. 돌미륵에 사회적 권위가 있든 없든 민초들은 자신의 눈높이에 맞는 언어로 세계를 표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1989년 경희대중앙박물관팀은 이 돌미륵이 선사시대 유물이라 보고 했다. 그러나 청동기시대의 것인지 후대의 것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돌미륵은 지표위로 드러난 부분이 높이160cm, 폭55cm, 두께44cm다. 노인회장 이씨는 “땅속 깊이가 12자(3.5m)”라며 예부터 전해오는 돌미륵의 전설을 들려줬다.

미륵 한 쪽에는 사람의 형상이 새겨져있는데 미륵이 바라보고 있는 쪽 마을은 여자들이 바람이 나고 뒷모습을 보고 있는 마을은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전한다.

시화호가 건설되기 전 미륵이 서 있던 자리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뱃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옛날 모래와 흙이 퇴적되기 전 미륵이 우뚝 솟아 있었고 이 자리를 이정표 삼아 뱃사람들이 배를 대기도 하고, 마을과 마을을 가르는 표지가 아니었는지 짐작된다.

마을 사람들은 미륵 보호를 위해 길을 내 포장을 하고 “선돌 주변 땅 25평이 국가소유지” 이니 “화성시에서 미륵을 보존하기 위해 대책을 세워야한다”고 입을 모았다.

#전사명 자선 송덕비
이 송덕비는 사강~송산간 303번 도로에서 대정마을로 진입 좌측 포도밭가에 동향으로 세워져있다. 고양군 용강면 전공사명 자선 송덕비 (高揚郡龍江面全公士明慈善頌德碑)라는 글이 새겨있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되고 마을 사람들이 흉년에 시달리며 식량이 부족해 굶주림에 시달리자 고양군 출신 전사명이 마을 사람들을 긍휼이 여겨 쌀을 베풀어 굶주림에서 구했다고 한다.  전사명의 자선 행위를 후대에 기념하기 위해 1921년 송덕비를 세웠다. 

#가수 조용필의 고향
가수 조용필의 고향 쌍정리 99번지엔 현재 초라한 조립식 건물이 한 채 서 있다. 1990년대 중반 이인제 경기도지사 시절 조용필 생가 복원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또한 조용필 스스로가 60이 되기 전에 생가 복원을 자제해 달라는 입장이다.

‘조용필 생가복원추진위원장’ 이승억(72) 씨가 생가복원의 필요성이 절실함을 전했다. “안타까운 점은 팬클럽에서 생가를 찾아와도 볼 것이 없어 사람들이 실망하고 간다. 한 때 일본관광객들이 많이 와서 생가를 보고 갔는데 큰 기대를 하고 왔다가 그냥 실망만하고 돌아간다. 조용필의 팬클럽은 국제적이다”며 올해부터 다시 생가복원을 위해 뛰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조용필은 화성시 발전을 위해 힘썼다. 특히 송산중 총동문회 주최로 1977년, 79년 2차례의 콘서트를 열었다. 이씨는 “조용필이 이 콘서트의 수익금을 한 푼도 가져가지 않았다. 송산중학교 배구부를 지원하기 위해 전액을 내 놓은 것이다. 당시 송산중학교의 체육관은 방음벽 설치가 안 돼서 인근 군부대의 담요를 빌려 사용했다”며 송산중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조용필이 힘썼다고 밝혔다.
   
▲ 정월대보름을 맞아 윷놀이를 즐기고 있는 쌍정2리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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