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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과 좌절… 그리고 희망
김영길 안용中 신임 개방형 감사
 
추연신 기사입력 :  2010/11/1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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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수원시 인계동에서 3년째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 영길 안용중 신임 감사를 만났다. 사환에서 행정실장으로, 가슴 아픈 기억을 안고 학교를 떠났다가 개방형 감사로 복귀하기까지 일대기를 들어봤다.

김영길 감사는 유년시절부터 극심한 가난으로인해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녀보지도 못했다. 유년시절은 누구나 어려웠기 때문에 불우하다 생각하기 보다는 어떻게 하든 적응해 빨리 이 가난을 벗어나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살았다고 말한다.

중학교, 고등학교는 야간을 다녔다. 그러다보니 체육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학창시절의 유일한 아쉬움이 운동을 못해본 것이라고 회고한다.

9번의 직업을 바꿔가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끈질기게 살았던 김영길 신임 감사는 특별히 안용중학교 행정실장을 맡을 당시를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기억한다.

안용중 출신으로 급사생활을 하며 고학으로 대학까지 졸업할 수 있었지만, 행정실장으로 일하면서 너무 많은 것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때의 기억을 지우고 싶다"는 말로 당시의 고통을 잊으려 했다.

현재, 개방형 감사로 안용중학교에 다시 돌아왔지만, 행정실장을 역임했던 당시를 생각하면 차라리 그때 그 일을 맡지 않았더라면 하는 후회를 하게 된다고.

그랬더라면, 하나뿐인 아들의 청소년기 방황을 막을 수 있었고, 김 감사 자신도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당시, 인생 전체가 송두리째 흔들리던 시기에 그래도 버팀목이 되어준 사람은 현재의 아내 임춘희(52세)씨였다고 말한다. 그의 표정에서 무한한 아내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두 부부가 안용중 행정실장을 떠난 후, 지난날 아픔을 딛고 마지막으로 선택한 직업은 세탁소였다. 세탁에 대해 문외환이었던 그가 전문기사를 두고 시작한 사업은 두 번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어떤 일이든 주인이 충분히 자신감을 가지고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어느날 갑자기 다른 곳에 세탁소를 차려 버린 기사의 뒷 모습을 보면서 또 한번 사람에 대한 실망과 좌절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전문기사 없이 치열한 노력을 통해 지금에 이르게 됐다며 웃는다.

아들이 공무원 시험준비를 하고 있고 이제는 나름대로 아내와 함께 안정적인 사업장을 꾸려가고 있다는 김 감사는 앞으로 여생을 소중한 아내와 봉사활동을 하면서 지내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나이를 먹어도 나이 값 못하는 사람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는 평소의 신조를 보여준다. 인간에 대한 존경의 척도는 사람의 기본 됨됨이이지 나이와 명예가 아니라고 확신하는 김 신임 감사의 표정에는 강한 신념이 느껴진다.

“인생은 고무줄”이라는 김 감사는 적응력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라고 말한다. "어떠한 일이든 피할 수 없으면 그냥 정면 돌파해야 한다"는 나름 경험을 바탕으로한 인생 노하우를 조심스레 내보이기도 했다.

인터뷰 내내 시종일관 기자를 배려하는 자상함과 진지함을 통해 지난날의 시련과 아픔에도 불구하고 탄탄하게 다듬어진 그의 내공을 엿볼 수 있었다.

<추 연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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