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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 (Dmitrii Dmitrievich Shostakovich)
박호암의 클래식 데이트
 
박호암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  2011/07/2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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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협주곡 1번 Cello Concerto No.1 in B flat major Op.107

1957년 4월, 뉴욕의 카네기 홀에서는 역사적인 연주회가 열리고 있었다. 연주자는 소련의 첼리스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동서의 문화적 화해무드가 무르익은 결과였지만 소련 당국은 로스트로포비치가 망명이라도 할까봐 바짝 긴장해서 그의 악기를 반출 금지 시키는 꼼수를 썼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자 오케스트라의 악장 옆에 경호원을 앉혔다. 혹시라도 연주 중에 무대 아래로 뛰어내려 도망 갈까봐 조마조마해서 견딜 수 없었기에 국가적인 체면이고 뭐고 다 팽개친 것이다.

당시 공산권의 음악가들이 얼마나 힘든 생활을 했는지를 상상할 수 있는 대목인데, 로스트로포비치의 스승인 쇼스타코비치나 프로코피에프 등 작곡가들의 상황은 더욱 불안했다.

연주자는 그나마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이기에 트집 꺼리가 적었지만 작곡가들은 툭하면 형식주의니 부르주아 예술이니 따지고 들어서 간장이 바짝 오그라들기 일쑤였다. 따지는 것으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솔제니친처럼 수용소에 끌려가는 날이면 끝장이기 때문이다.

물론 솔제니친은 서방의 끊임없는 구명운동 덕에 석방되어 노벨문학상까지 받았지만 그런 재수는 아주 드물다. 16세에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한 로스트로포비치는 소련의 거장들에게 두루 사사를 하며 최고의 음악인으로 성장한다. 그의 스승이던 쇼스타코비치는 이 대단한 제자를 위해 첼로 곡을 만들었는데 그 곡이 오늘의 첼로 협주곡 1번이다.

로스트로포비치가 훌륭한 것은 비단 첼로만를 잘 연주해서가 아니다. 음악에 대한 뚜렷한 철학과 따스한 인간미,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사수할 용기, 수많은 음악인을 발굴해서 길을 열어준 선배로써의 드넓은 아량이 있었기에 위대했다. 영국의 더 타임스는 로스트로포비치를 ‘현존하는 최고의 음악가’로 칭송했다.

최고의 첼리스트가 아닌. 물론 타계하기 전의 일이다. 쇼스타코비치의 첼로 협주곡 1번은 로스트로포비치만이 완벽하게 연주할 수 있다고들 말한다. 그를 너무나 잘 알던 스승이 만들었으니 그의 역량을 얼마나 극대화 시켰을지 뻔하다. 1악장은 쇼스타코비치 스타일의 첼로 동기로 시작 되는데 중독성이 있어서 몇 번 듣다보면 흥얼거리게 된다. 2악장은 서정적인 현의 울림으로 시작해서 혼의 독주가 첼로를 초대한다.

이 곡은 전체적으로 혼의 역할이 많다. 3악장은 카덴차. 카덴차는 빠른 악장에서 독주자가 테크닉을 발휘하도록 만든 무반주 악구인데 이곡에서는 한 악장 전체를 카덴차로 만들었다. 긴박감 넘치는 4악장은 1악장의 주제가 회상 되면서 맺는다. 장한나의 음반이 스승인 로스트로포비치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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