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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세계에 들어서다
 
김재철(향남읍 발안리) 기사입력 :  2013/04/09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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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 서편 룩소르는 죽음의 땅이다.

강 건너 입구에는 높이 20m의 아멘호테프 3세 석상이 두 개 있다.

원래 아멘호테프 3세 장제전(葬祭殿) 입구에 세워졌었는데 장제전은 후기 파라오가 석재로 이용됐다.

그리스인들은 이 석상을 트로이 전쟁의 영웅 멤논의 거상이라고 불렀다. 새벽이면 죽은 멤논이 어머니인 여명의 여신 에오스를 부르는 울음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석상의 갈라진 틈에서 나오는 진동소리다.

오른쪽 석상은 지진에 의해 파손되었으나 130년 경 로마황제가 복원했다.
석상 앞 길가에 초췌한 개 한 마리가 자고 있다.

이슬람 세계에서 개는 대우 받지 못한다. 무하마드가 개를 사자와 같은 야수로 분류하였기 때문이다. 석상 주위의 푸른 밀밭. 이삭이 탐스럽다.

이집트인들은 처음 밀을 갈아 죽을 만들어 먹다가 기원전 6천 년 경부터 반죽을 밀어 빵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기원전 2600년 경 우연히 때 지나 부푼 반죽을 구웠더니 부드러운 빵이 되었다. 발효빵이었다.

사람들만 빵을 먹은 것이 아니라 신들도 빵을 먹었다. 기원전 2498∼2345년 제5왕조 사후레왕이 신들에게 받친 빵은 매일 네크베토 신에게는 800개, 부토 신에게는 4,800개, 라 신에게는 138개였다.

멤논의 거상을 지나면 바위산을 깎아 만든 합세슈트 여왕의 2층 규모 장제전이 있다. 1층에는 좌우 22개의 기둥과 죽음의 신 오시리스 석상이 있다.

합세슈트는 이집트 최초의 여성 파라오였다. 따라서 여왕의 석상은 턱수염이 있고 가슴이 없다. 2층 테라스 벽면에는 여왕의 탄생과 어린 시절, 외국과의 교역 장면들도 새겨 놓았다. 지난 1987년 이 신전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를 공연한 적이 있다.

도굴꾼이 모여 사는 구로나 마을을 지나면 나무 한 그루 찾아 볼 수 없는 붉은 암산, 왕가의 계곡이 펼쳐진다. 여기에 수많은 파라오들이 바위 속을 뚫고 묘를 만든 후 스스로 미라가 되어 묻혔다.

나일강이 범람하지 않는 이 지역에 무덤을 만든 이유는 권력이 약해진 파라오들이 산을 자연적 피라미드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왕의 묘소 64기가 발굴되고 그중 9기만이 일반에 공개된다. 입장료를 내면 3묘를 관람할 수 있다. 유일하게 1922년 영국의 하워드 카터에 의해 완전한 상태로 발굴된 제18왕조 투탕카멘의 무덤은 자물쇠가 잠겨있다.

람세스 3세 묘지 안으로 들어간다. 묘 입구에는 파피루스와 연꽃위에 앉아 있는 람세스 3세가 태양신과 만나는 모습, 벽면에는 배를 타고 나일 강을 이동하는 모습, 물과 포도주를 보관한 항아리, 하프를 연주하는 모습 등이 그려져 있다. 람세스 3세의 석관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그리스 문명의 효시 크레타 왕국이 크노소스 미궁을 세우기 1000년 전, 이집트는 이미 확고부동한 대국이 되어 있었고 로마를 건설한 티베르 강변 팔라티노 언덕의 부족들도 이집트가 전성기를 맞이할 당시에는 초라한 촌락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를 두고 기원전 5세기 헤로도토스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수많은 경이와 위대하다는 말로는 아무리 해도 모두를 형용할 수 없는 기막힌 업적>이라 고대 이집트를 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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