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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행복이란?
 
김재철 (향남읍 발안리) 기사입력 :  2013/04/30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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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 의사 올리버 색스가 펴낸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묘한 충격을 준다.

책의 내용은 우리가 쉽게 말하는 신경장애 환자라 불리는 사람들과 겪었던 경험담이다. 자폐증상이 있는 쌍둥이 형제 존과 마이클은 탁자에 있던 성냥갑이 떨어져 성냥개비가 바닥에 흩어지자 동시에 111라고 외쳤다. 이어 존이 37라고 중얼거렸다. 마이클도 37라고 중얼거렸다.

다시 존이 37이라고 했다.

의사가 물었다. 왜 37을 세 번 중얼거렸지? 둘은 동시에 37, 37, 37, 111. 존과 마이클 형제는 정확하게 소수로 분해해서 그 숫자를 맞춘 것이다.

어느 날 형제는 6자리 숫자를 나열하면서 기쁨을 만끽한다. 그들은 의사가 들어왔음에도 눈치 채지 못하
고 숫자놀이에 열중한다.

의사는 이 놀이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이 열거하는 숫자를 적어와, 학창시절 보았던 소수표를 보고 6자리 소수인 것을 알았다.

그래서 다음 날 소수표를 몰래 감추고 형제 옆에 앉았다. 그들은 6자리 소수놀이를 계속했다. 의사는 몰래 책을 뒤척여 8자리 소수를 불렀다. 두 사람은 의사를 돌아보고 동시에 싱긋 웃었다. 그들은 8자리 숫자가 소수인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5분이 지나자 존의 9자리 숫자가 나왔다. 이어 마이클이 9자리 숫자를 불렀다.

이번에는 의사가 몰래 소수표의 10자리 숫자를 불렀다. 오랜 침묵이 흘렀다. 이번에는 존이 12자리를 불렀다. 이어서 두 사람은 20자리까지 불렀다. 당시 소수 10자리 이상이 실린 책은 없었다고 한다.

둘은 숫자놀이를 공연하는 것으로 경제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의사들은 쌍둥이 형제를 떼어 놓아 사회적응 훈련을 시켰다. 이들은 따로 따로 수용되어 버스를 타고 다닐 기본적인 사회적응은 되었다.

하지만 둘만이 나누던 숫자의 대화는 사라지고 끊임없이 일에 시달리는 평범한 인간이 되어 버렸다.

더불어 쌍둥이 형제는 삶의 기쁨이나 살아있다는 감각조차 사라지고 말았다. 쌍둥이는 겉으로는 고독해 보였겠지만 많은 친구들, 숫자로 가득 찬 평온하고 행복한 세계를 살고 있었다. 쌍둥이에 대한 가차 없는 치료가 과연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언젠가 시외버스 옆자리에 동승한 앞 못 보는 젊은이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육체적 도움은 단지 버스에서 내릴 때 발을 헛디딜까 염려되어 부축한 것이 전부이었지마는 전혀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며, 함께해서 고맙다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멀리까지 바라본 기억이 있다.

올리버 색스는 정신지체 환자들 모두 영혼을 가진 인격적 존재로 바라본다. 그리고 외친다. 아무리 기묘하게 여겨질지라도 우리는 이를 ‘병적’이라 불러서는 안된다.

단지 두뇌신경 얼개가 단 하나 헝클어진 환자들을 고정된 잣대가 아닌 보통사람들로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행복하게 사는 것이 우리 삶의 목표라면 행복을 느끼는 그들만의 방법도 이해해야 한다.

본래 일심이고 둘이 아닌 것을, ‘건너야 할 저쪽 언덕도 없고 떠나야 할 이쪽 언덕도 없다’는 법구경의 말씀도 생각해 볼 일이다. 장애인의 날, 진정 행복한 삶이 무엇인가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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