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땅이름의 뿌리와 지명유래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연재] 땅이름의 뿌리와 지명유래<49>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15/09/16 [17:32]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남양동(南陽洞) -4-

 

10. 안석동(安石洞)

 

본래 남양군 둔지곶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 폐합에 따라 안의동과

거석동을 병합하여 안의동(安儀洞)의 안(安)자와 거석동(擧石洞)의 석(石)자를

따서 안석동이라 해서 수원군 음덕면에 편입하였다.

 

거석동(擧石洞)
안석동에서 으뜸 되는 마을로 큰 돌이 있어 불리워진 것으로 보인다.

 

후평(後坪)
거석동 서쪽에 있는 마을로써 마을 뒤편에 들이 넓은 곳을 가르키는 지명이다

 

안의동(安儀洞)
거석동 옆에 있는 마을이다.

 

개묵동(開默洞)
‘개’-- > 갯벌
‘뭇(水)’-- > 묵  --자음동화로 ㅅ  이 ㄱ 으로 바뀐 경우
바닷가 마을에 붙는 지명으로 본다.

 

11. 온석동(溫石洞)


본래 남양군의 둔지곶면의 지역으로 배로 돌을 날라다가 돌로 회를 구웠으므로 원두루지,

온석굴 또는 온석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 폐합에 따라 월기동을 병합하여

온석동 이라 해서 수원군 음덕면에 편입되었다. 배가 드나들던 갯벌은 간척 사업으로

온석동에서 팔탄면 노하리로 제방을 막아 대성저수지와 함께 큰 농장으로 기름진 옥답이

조성되어 있다.

 

월기동(月基洞) .달기터

 

온석동의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서 달(月)은 ‘산(山)’의 옛말로 산밑 마을을 가리키는 지명으로 보인다. 또 ‘달’은 ‘들’의 말로도 쓰인다.

 

12. 장덕동(長德洞)


본래 남양군 둔지곶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 폐합에 따라 장곶동,덕방동, 바위삼,

매바위를 병합하여 장곶과 덕방의 이름을 따서 장덕동이라 하여 수원군 음덕면에 편입되었다.

예부터 번화한 포구로써 조선초에는 장곶면의 중심 마을을 이루었다.

 

덕방(德房). 덕뺑이
예부터 남양방씨(南陽方氏)의 집성촌으로 방둔지(方屯地)로 불려오다 그 후 덕방동으로 부르게 되었다. 풀무골 북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덕(德)은 비탈, 언덕, 고원의 뜻이다. 또한 ‘방’은 ‘밧’에서 나온 말로 “밖‘을 나타내므로 비탈진 곳에 형성된 마을을 가리키는 지명으로 보아야 한다.

 

응암동(鷹岩洞). 매바위

‘산’을 뜻하는 ‘뫼’는 음운상으로는 ‘매’로 변할 수 없음에도 ‘매(鷹)’로 또는 ‘메’로 널리 쓰이고

있다. 이에 따라 각처에 매봉(鷹峰)이나 응봉(鷹峰)이라 불리우는 지명이 널리 퍼져 있다.

 

암삼(岩三)
바닷가에 접해 있는 이 마을에는 북쪽으로 3개의 바위가 있어 붙여 졌다고 하나 ‘삼’은 ‘산’의 뜻으로 쓰이며 바위가 많은 산동네를 나타내는 지명으로 본다.

 

장곶(長串)
바닷가 쪽으로 길게 튀어 나간 곳의 지형에 있는 지형에 붙는 지명으로 본다.

 

풀무골(치동-治洞)

고개가 있는 곳의 이름으로 바위산 동쪽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13. 장전동(獐田洞) .장전. 장전굴


본래 인천부 이포면의 지역으로 지형이 노루처럼 생겼으므로 장전, 장전굴, 장전동이라 하였는데

1895년(고종32)지방 관제 개전에 의하여 남양군 화척지방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통 폐합에

따라 동이터, 정자동, 무덤실을 병합하여 장전동이라 해서 구원군 음덕면에 편입되었다.
‘장’(獐)‘은 한자 이름인 ’노미‘, ’녹미’를 옮긴 것이다. 또 녹미의 ‘녹’은 ‘노루’나 ‘사슴’을 뜻하

기도 해서 ‘놀미’를 ‘노루미’옮겨 쓰기도 했다. ‘늘미’, ‘늘재’, ‘널미’, ‘늘목’같은 이름은 ‘낮은

고개’나 ‘긴 고갯길에 주로 붙는다. 한자로는 ’널‘의 뜻인 판(板),’늘다‘의 뜻인 어(於), ’누렇다‘는 황(

黃), ’넓다‘의 뜻인 광(廣),’노루‘의 뜻인 장(獐)등이 많이 취해졌다.

 

반송동(盤松洞)
받   >  반   >  밤 (산,산골짜기)
송(松) --->  솔  -->  솔다 (좁다. 작다)
마을이 작은 산동네를 지칭 한 말로 본다.

 

무단실동(武團室洞)
‘둠’ 계통의 땅이름은 ‘담’, ‘단’으로도 변하며 ‘둥글다’의 뜻만 아니라 ‘뭉침(團-단)’, ‘덩이(體-덩

이)’, ‘둘림(周)등의 뜻이 포함되기도 해서 ’무‘는 물의 옛말이므로 물이 많은 마을에 붙는 지명으로

보인다.

 

정자말(정자동)
장전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소나무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14. 활초동(活草동)
본래 남양군 둔지곶면의 지역으로 지형이 화살촉처럼 생겼다고 해서 살구지 또는 활호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 폐합에 따라 전촌, 후촌을 병합하여 활초동이라 해서 수원군

음덕면에 편입되었다. 예부터 둔지곶면(屯知串面)의 중심지가 되었고 조선후기 대원군의

천주교 박해가 심할 때 신도들의 은신처가 되었다. 또한 근대 음악의 선구자 홍란파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살’을 산다는 뜻으로 ‘활(活)’로보고 많은 지명을 나타냈는데 ‘  ’

무리의 지명으로 산골을 의미하며 ‘초(草)‘는 풀을 의미 하는 것으로’푸르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초곡리(草谷里)란

법정 지명이 전국에 9곳이 있으나 이중 7곳이 ‘새실(새일)’이 원이름이고 2곳(전남 승주군과 경남 합천군)이 ‘푸실(푸시골)이라 원이름을 가졌던 곳이다. 여기서 ’새‘ 나 ’풋‘은 다같이 ’풀‘을 뜻하고 있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화성신문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인기기사목록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