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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땅이름의 뿌리와 지명유래<51>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15/09/1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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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봉면(飛鳳面) -2-

 

5. 양노리(兩老里)


본래 남양군 미지곶면의 지역인데 1914년 백노동(白老洞-바리골)과 건노동(件老洞-널문이(板門洞))의 두 이름을 따서 양노리라 하여 비봉면에 편입하였다.
‘낮다’, ‘늘다’, ‘느리다’, ‘늘이다’등의 뿌리 말은 ‘낟’또는 ‘ 녿 ’이며 이말은 ‘나드(나디).’ ‘

노드(노디)’로 옮겨가고 다시 ‘나르’,‘노르’ 또는 ‘노르(黃-황)’로 옮겨지면서 이런 지명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구포장터(鳩浦場). 굿개장터. 시장동(市場洞)
널문이 북쪽 구포리, 굿개 경계에 있는 마을로 시장이 섰었다고 한다. 조선조 말엽 이곳은 면소재지였는데 5일장이 서기도 하여 항상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상점이 즐비하여 시장의 성격을 형성하여 ‘시장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널문이(板門)
‘낮다’, ‘늘다’, ‘느리다’, ‘늘이다’등의 뿌리말은 ‘낟’또는 ‘ 녿 ’이며 이말은 ‘나드(나디).’ ‘

노드(노디)’로 옮겨가고 다시 ‘나르’, ‘노르’ 또는 ‘노르(黃-황)’로 옮겨지면서 이런 지명이 붙은 것으로

보이며 넓고 큰 땅의 이름이다.

 

미력동(彌勒洞-미륵동)
풍수적 지명으로 기복신앙을 기원하며 불려 왔으며 마을앞 냇가에서 나온 미륵불을 모셔놓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은 이후 ‘미륵동’이라 불려왔고 지금까지 전해온다.

 

염치(鹽峙). 염치고개
소금은 산간벽지에서도 필요로 하는 생활소모품으로 예로부터 소금의 수송은 인간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의하나이다. 소금과 관계되는 이름으로 ‘염치명(鹽峙名)이 많이 붙여져 있다.
이 중에서 소금을 지고 넘었던 고개를 염치(鹽峙)라 하여 전국 각지에 많은 전설 등과 함께 남아 있다.
남양 북양동에서 비봉면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백로동(白老洞). 바리골
‘밝이’의 뿌리말인 ‘  ’은 ‘부리’, ‘부루’, ‘비로’, ‘바라‘등의 이 ’  ‘을 그 뿌리로 두고 있

는 것이 무척 많다. 이 ’  ‘이 한자 지명으로 이용 될 때 부득이 백(白,百),  맥(貊)등도 이 계통으로 ’양지말‘의 땅이름으로 보인다.

 

6. 유포리(柳浦里). 버들개. 버들무지
본래 인천부 이포면의 지역으로 앞에 ‘개(浦)’가 있고 버들이 무성하므로 버들개, 버들무지, 유포라고 하였는데 1895년(고종32) 지방관제 개정에 따라 남양군 미지곶면에 편입되고 1914년 유지동 대장골을 병합하여 유포리라 해서 수원군 비봉면에 편입되었다.

 

대장골(大將谷-대장곡)
버들무지 남쪽에 있는 마을로 길게 늘어진 마을의 이름으로 ‘장(將)’을 이 ‘장(獐)‘으로 봐야 하며 ‘늘’을 그 어원으로 하는 ‘느르뫼’, ‘누르미’ ‘느리뫼’등은 늘어진 지형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넓은’과 ‘늘어

짐’의 뜻과 관련 된 곳을  살펴보면 ‘너르골’, ‘너르실’, 노루골‘, ’느르실‘등이 있다.
또한 어(於), 눌(訥), 노(老), 광(廣)도 넓음과 관계가 있다.

 

유지동(柳支洞)
‘버드실’은 ‘벌’마을의 뜻으로 ‘버드내’와 비슷한 땅이름으로 ‘버들개’가 있다. 이 땅이름은 대개 ‘유포

(柳浦)‘라는 땅이름으로 옮아가 있다. ’유(楊)’자 지명 중엔 ‘얕은(낮은)’의 뜻이 들어간 것이 적지 않음을생각 해둘 필요가 있다.  ‘내(川)’가 길게 벋었거나 산줄기가 길게 이어졌거나 들이 멀리 퍼졌거나 했을 때 ‘는’(=늘어난)을 관형어로 한 지명이 많지만 ‘벋을’이란 말이 들어간 것도 적지 않다.
‘벋을은 ’버들‘이 되어서 진짜 ’버들(柳 )‘지명과 얽혀서 뜻을 구분하는데 어려움을 안겨준다.

 

함박골(芍藥-작약)
‘크다’는 뜻이 옮아간 이름으로 ‘감나무’, ‘함박꽃‘, ’은행나무‘등ㅇl 있다.
감골(大谷.大峙)--->  감골(柿谷)-충남 당진군 당진읍 시곡리 등
한받(大山)--->  한박   >   함박   >작약산(芍藥山)
한곶(大串)--->  항곶   >   향고지(杏花)-경북 영양군 청기면
                                       향화리.

7. 자안리(紫 安里). 안양(安陽) 재양(載陽)
본래 재양현(載陽縣) 또는 안양현(安陽縣)이 있던 자리인데 고려 시대에 수주에 편입되고 조선시대에 저팔리면이 되었다. 안양, 재양 또는 사양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신안동(新安洞)을 병합하여 자안동이라 해서 비봉면에 편입하였다.
‘자’는 ‘산’의 옛말로 산 안쪽마을을 가르키는 지명으로 본다.

 

8. 청요리(靑蓼里)
본래 남양군 저팔리면의 지역인데 청용 동남쪽에 있는 요골은 옛날부터 갈대(蓼)가 많이 자생하여 주민들이 이 갈대로 살구지를 만들어 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 갔다고 한다. 1914년 청용동과 요곡동을 병합하여 청요리라 해서 비봉면에 편입되었다.

 

요곡동(蓼谷洞). 요골
‘갈(蓼’)은 ‘가ᄅᆞ’의 옛말로 ‘물가나 분류의 뜻을 가진 것으로 ’물가‘마을이나 냇줄기가 갈라 진 곳의

지명에 많이 쓰인다.

 

용두동(龍頭洞) .용머리
용은 우리 겨레에게는 예로부터 무척 상서로운 동물로 여겨왔으며 ‘용’은 ‘미르’, ‘미리’등으로 쓰여 왔으며 ‘거룩함’, ‘높음’, 어짐‘의 뜻으로 ’용‘을 취한 것이 많다.

 

청용동(靑龍洞)
청요리마을의 산세가 용의 형국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여 전해진다. ‘푸른’의 ‘청(靑)’은 ‘풀’에서 나온 말로 ‘돌’을 가르키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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