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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2] 왜 CEO들에게 인문학인가?
박경철 시골의사 원장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18/05/14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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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철 시골의사 원장     ©화성신문

단테의 신곡에서 오디세우스가 재등장하게 된다. 이 작품의 핵심은 인간의 거부 할 수 없는 본성인데 예로서 개구리와 전갈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개구리 의 도움없이는 강을 건널 수 없는 전갈은 개구리에게 부탁한다. 탐탁치 않아하는 개구리에게 전갈은 너를 쏘면 자기도 같이 죽는데라며 설득시켜. 강을 건너게 된다. 강의 반쯤을 건너온 전갈은 결국 개구리의 등에 독침을 넣게 된다. 개구리는 죽어가며 Why라고 물었고 전갈은 It's my nature라고 답했다. 혼자서는 하지 못할 일에 대해 도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으로 개구리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다. 

 

이러한 본성은 그 끝을 가늠하기가 어려워 추악하고 사악하다 하여, 본성을 이겨낼 때 대단하다고 평가받는다. 인류 역사에서 인간은 수많은 도전을 하였다. 그러한 도전이 우리의 진정한 본성이라 할 수 있다. 단테는 우리에게 본성이 과연 인간의 추악한 심리를 대변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점을 주었다. 그결과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인간중심의 세계관이 도래했고, 신을 거역하고 신과 맞서싸워 이긴 오디세우스가 재조명을 받는다. 

 

오디세우스처럼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기 보다는 그에 맞서 고난과 역경 속에서 노력하여 진취적인 것을 이루고 발전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숙제이고 길이라고 생각해보게 된다. 

 

인간에게는 호기심의 본능이 있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개척하고 싶은 본성이 있다. 본성은 약점도 있지만 강점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세가 지나 르네상스를 통해서 드디어 인간이 신 앞에 놓이게 된다. 즉 인간중심의 세계관이 중요시되며 인간중심의 문화를 창조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인간 앞에 돈이 있다. 돈이 인간을 지배하게 되어버렸다.

 

페르시아는 수많은 제국 중 가장 위대한 제국이었다. 그리스 야만족 어부 2명이 난파되어 페르시아 해안에서 포로가 되어 잡혀 페르시아의 황제 앞에 불리어간다. 그 당시 왕의 앞에서는 무조건 무릎을 꿇어야만 했고, 그렇지 않으면 목을 벤다. 하지만 그들은 두 다리로 꼿꼿이 서서 황제를 가리키며 ‘사람은 사람에게 무릎 꿇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이들 어부들은 작두에 올려저 잘라지고 길에 버려져 개가 뜯어먹도록 한다.

 

신의 대리인이라고 생각하는 제왕적 사고와 관점은 모든 것이 왕의 것이고 모든 것은 왕이 허락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무엇인가를 규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 규정된 틀 안에서는 어떤 연민과 공감과 휴머니티도 존재하지 않는다. 잘못된 리더십은 제일 먼저 프레임을 만든다. 그리고 인간은 그 프레임에 가두 어진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너무 쉽게 규정해서는 안된다. 황제의 관점은 같은 인간인 그리스 어부를 죽인다.

 

그리스 어부의 관점은 신과도 동등한 우리는 인간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다는 것이며 이것이 평등이라는 가치의 씨앗이다. 페르시아 황제는 그리스에 사신 4,000명을 보내서 그리스 족장들을 모아 놓고 말한다.

 

우리 페르시아 제국이 식량과 교육을 지원하겠다. 대신 여기 있는 모든 것은 페르시아 황제의 것임을 인정하고 황제에게 주인으로 잘 모신다는 뜻으로 흙과 물을 바치라고 한다. 그리스 야만족들은 페르시아 황제 사신의 목을 다 베고 한명만 살려 보내면서 황제에게 이렇게 전하라고 한다.

 

‘모론라메’(네가 와서 가져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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