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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3] 왜 CEO들에게 인문학인가?
박경철 시골의사 원장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18/05/21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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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철 시골의사 원장     ©화성신문

한명의 사신이 돌아와 페르시아 황제에게 그 사실을 보고한다. 페르시아 황제는 극단적 분노로 100만 대군을 직접 이끌고 그리스로 간다. 그 당시 그리스 인구는 50만이었다. 이때 페르시아 황제는 종족을 말살하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최종공격 직전 지금이라도 너희가 나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나 에게 복종하면 모두 살려주겠다고 마지막 기회를 준다. 

 

당시 그리스 왕의 연설문 내용이다.

 

지금 우리민족 전부가 없어질 수도 있다. 페르시아에 항복하던지 아님 목숨 걸고 명예를 지키던지 결정을 내려야한다.

 

지금까지 나는 왕으로서, 여러분에게 위임 받은 권한을 바탕으로 대소사를 결정해왔다. 하지만 이번 일은 우리 모두의 운명이 달려있어 나 혼자 결정할 수 없다. 우리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우리는 신의 형제로서 한 사람 한 사람 개개인이 존엄한 존재다. 여기 있는 모든 시민은 한명 한명이 신의 무게만 큼이나 존엄한 존재들이다. 이 존엄한 존재이기에 페르시아 100만의 노예와 달리 한명 한명은 각자의 생각과 뜻을 가질 수 있다. 

 

인간 존엄성의 제1의 조건은 자유다.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 존엄은 없다. 자유의 첫번째 속성은 어떤 견해의 주장이든, 사상이든 철학이든 자유롭게 가질 수 있는 권리, 그리고 그 누구도 방해도 받지 않고 자 기의 뜻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자유의 속성이다.  우리 모두는 어떤 생각을 하던 다 표현할 수 있으며 상 대의 자유도 인정하고 상대의 어떠한 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며 그 대원칙을 바탕으로 지금부터 대토론 회를 개최한다.

 

2박 3일간의 토론이 끝난 후 왕은 그리스 국민들에게 제안한다.

 

수백개의 바구니 안에 페르시아 제국과 맞서 싸우자는 사람은 흰돌을, 항복하자는 사람은 검은돌을 넣는데, 이때 돌은 왕도 귀족도 어부도 부자도 빈자도 오르지 한 개다. 흰 돌과 검은 돌의 수는 6 : 4로 나왔고, 이로서 페르시아 전쟁이 시작되고 믿기지 않게 그리스가 승리하게 된다.

 

인간 한명 한명이 존엄하고 그 자유가 있음을 증명하는 장면이고 이것이 민주주의의 시작이 되었다. 2,800년 전에 그리스 야만족이 선언했던 그 가치를 넘어서는 가치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모든 나라가 민주주의를 사상을 채택하고 있다.

 

2,800년이 지난 지금, 인간은 도구나 과학으로서의 엄청난 문명을 발전시켰다. 이와 더불어 인간의 행복도 훨씬 많이 좋아져야 하지만 현재의 인간들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안타깝게도 그때 그들이 선언했던 인간에 대한 관점, 인간에 대한 시선,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이해는 2,800년 전 그대로 두고 왔다. 

 

인간이 진짜 인간 본연에 대한 통찰과 시선과 인간을 바라보는 그 해석들을 2,800년 전에 두고 온 것이다. 

 

우리의 과학기술이 이만큼 달려와보니 점점 더 불편해 지는 것이다. 도구로서의 문명은 있는데 인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 인간을 회복하는 관점, 그때 우리가 두고 온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되돌아보는 것, 그것이 바로 인문이다. 우리가 그때 놓고 온 인간, 그 존재 자체를 인식해야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불멸성을 추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은 그 자체로 시선이 돌아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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