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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화박사의 심리칼럼] ‘협소한 세계관’
윤정화 상담학박사 마음빛심리상담센터장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19/02/12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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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정화 상담학박사 마음빛심리상담센터장     ©화성신문

어머니는 아버지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저 언제나 조용하게 아버지에게 헌신하는 사람으로만 보였다. 그래서 나는 연약하고 자기주장을 하지않는 어머니보다 강하면서 리더십이 있는 아버지가 좋아 보였다. 아버지가 우리 집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 생각했고 그런 아버지를 닮으려 노력했다.

 

아버지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하고, 아버지처럼 말을 많이 하지 않고 책임감 있게 자신의 일을 하면서 살아왔다. 성실하고 부지런한 아버지의 모습은 나에게 모범적으로 보였다. 아버지는 나에게 최고의 본보기였다. 나는 아버지가 이 세상 사람 중에서 최고인줄 알았다. 아버지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며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고 아버지가 원하는 착한 아이가 되고자 하였다. 그래서 아버지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똑똑한 아이였다.

 

착한 아이의 역할을 했을 때 아버지는 나를 더욱 예뻐해 주셨다. 나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아버지로 부터 인정받고자 무엇이든 열심히 하였다. 심지어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집안일이나 동생들을 돌보는 일을 열심히 하며 아버지의 사랑을 갈망하였다. 아버지는 묵묵히 나를 지켜보셨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나의 수고를 모두 알고 계실 것이라고 믿었다.

 

나의 믿음에는 아버지의 인정과 사랑이었다. 내게 말로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 아버지에 대하여 말보다 속이 깊은 사람이라고 이해하면서 마음 깊이 나를 알아주시리라 믿었다. 이것은 순전히 내 생각이었다. 생각은 나이를 먹을수록 믿음이 되었고 이 믿음은 결국 신념이 되어 아버지를 내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으로 심어두었다.

 

하지만 이것은 좁디좁은 내 시야에서 형성된 나의 협소한 세계관이었다. 돌이켜보면 이는 조용하고 말없던 어머니와 비교하여 아버지를 더 높은 존재로 바라보고 이에 존경이란 이름을 내 멋대로 붙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분명 성실하고 올곧았지만 동시에 권위적이고 보수적이었다. 소신이란 이름 아래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았고 상냥하던 어머니를 때때로 무시했다. 결정적인 것은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맹목적인 사랑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러한 모습을 보지 않으려 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나는 나의 맹목적인 믿음을 위하여 아버지에 대한 환상을 깨지 않으려고 내가 나 스스로를 속였던 것이다. 

 

아버지를 향한 나의 세계는 존경이라는 환상을 심어두고 나를 스스로 속이며 살아온 것이다. 아버지는 아버지일 뿐이었다. 나의 세계는 지극히 좁아서 아버지를 뛰어넘을 만한 사람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세계관은 협소했다. 협소하면 할수록 더욱 더 큰 목소리로 아버지를 존경한다고 소리쳤다. 좁으면 좁을수록 보이는 것이 한계가 있다. 좁기 때문에 잘 보이고 잘 보이는 것이 커 보이기 때문에 자신이 주장하는 목소리는 강하게 된다. 갇혀있는 것에 익숙한 사람은 자신의 목소리밖에 듣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고 타인의 세계를 들여다보기에는 두렵고 무섭다. 그럴 때 인간은 타인의 세계를 향하여 방어와 배척 또는 공격을 할 수도 있다.

 

(www.maumbi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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