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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호 교수의 Leadership Inside 191]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폭력이 된다면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2/01/03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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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호 아주대학교 명예교수·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장     ©화성신문

어느 날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라디오 방송을 듣게 되었다. 방송에서는 어머니들에게 육아 상담을 하고 있었다. 상담을 청하는 어머니가 말했다. “우리 아이는 짜증쟁이예요. 하루 종일 짜증만 낸답니다.” 5살짜리 아이가 이렇게 하루 종일 짜증만 낸다면 엄마는 얼마나 ‘짜증스러울까?’ 싶었다. 상담을 해 주는 선생님은 고수였다. 선생님은 이렇게 물었다.

 

“그렇군요. 힘드시겠어요. 하루에 몇 번이나 짜증을 낼까요?” 그 질문에 어머니는 얼른 대답을 못했다. 잠시 후, “몇 번인지는 세보지 않았지만 하여튼 많이 내요”라고 답했다. 

 

선생님이 또 물었다. “그럼 오늘 바로 직전에 짜증 낸 것은 언제지요?” 어머니는 대답했다.  “오늘 오전이요.” 방송이 오후 3시쯤 되었으니 적어도 5시간쯤 전에 짜증을 냈다는 이야기였다. 이렇게 상담 선생님이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더니 어머니에게 제안을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 그럼 지금부터 내일 이 시간까지 아이가 몇 번이나 짜증을 내는지 한번 세어 보시고 내일 다시 통화해 보기로 해요.”

 

필자는 궁금해서 다음날 그 채널에 주파수를 맞추고 방송을 들었다. 어제 그 어머니가 나타났다. 그 어머니의 이야기는 놀라왔다. 아이가 세 번 정도 짜증을 내더라는 것이다. 어머니 스스로도 놀랐다고 했다. 자신은 여태까지 아이가 하루 종일 짜증만 낸다고 생각해 왔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그래서 아이를 ‘짜증쟁이’라고 불러 왔다. 아이가 짜증을 조금 많이 낸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짜증쟁이’는 아니었던 것이다.

 

이 방송을 듣고 필자는 필자의 아내를 떠올렸다. 아내는 필자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한다. “당신은 바깥일은 많이 하는데 내가 부탁한 일은 해 준 적이 없어.” 어느 날 역시 아내가 “내가 부탁한 것은 당신은 항상 까먹어”라고 이야기했다. 

 

이 때다 싶어 방송에서 들은 기법을 적용해 보기로 했다. 근래에 있었던 일 중에서 필자가 까먹은 일과 까먹지 않고 부탁을 들어준 일을 하나씩 같이 적어 보았다. ‘놀랍게도’(ㅎㅎ) 까먹지 않고 부탁을 이행한 것이 이행하지 않은 것보다 훨씬 많았다. 아내는 잘못 이야기했다고 필자에게 사과를 했고, 필자는 앞으로 더 부탁을 잘 수행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우리는 대화를 하면서 사실을 이야기한다고 하면서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일반화하거나 도덕적으로 판단하여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짜증 몇 번 내면 ‘짜증쟁이’가 되고, 부탁 몇 번 안 들어주면 ‘항상 거절하는 사람’이 된다. 회사에 대해 문제점을 이야기하면 ‘불평분자’가 되고, 일을 좀 늦게 하면 ‘늑장 부리는 사람’이 된다. 

 

S 사장은 유독 이런 경향이 심하다. 조금 실수한 직원에게는 ‘넋을 놓고 일하는 사람’이라 그러고, 뭘 모른다고 하면 ‘역량이 부족하네’라고 하고 중간 관리자들에게는 ‘리더십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한다. S 사장은 이렇게 판단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사람을 볼 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S 사장에게 ‘말이 많은 사람’이라고 찍힌 이 부장은 억울하기 짝이 없다. 이 부장이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있어도 S 사장은 이 부장을 말 많은 사람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이 부장은 노이로제가 생길 지경이다. S 사장을 만나는 것이 두려운 것은 물론이고, 직원들하고 회의를 하는 것도 신경 쓰이고, 외부인을 대하는 것도 땀이 난다. 이 부장에게 ‘말이 많다’는 표현은 폭력이다.

 

비폭력 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를 주창한 마셜 로젠버그(Marshall Rosenberg) 박사는 이 세상의 갈등은, 심지어는 전쟁까지도 대부분 말에서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폭력적인 대화를 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폭력적인 대화가 상대에게 욕설을 하고, 악담을 하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부드럽게 표현하는 속에도, 그리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것 같은 대화 속에도 ‘폭력적인’ 요소가 많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실제로 관찰하거나 아는 것을 넘어서서 일반화시키고 도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문제인 것이다. 한두 번 본 것을 가지고 항상 그렇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의 행동이 그런 것을 가지고 그 사람의 의도가 그렇고, 그 사람이 원래 그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고 단정하는 것 말이다. 내가 바른 도덕심을 갖는 것은 얼마든지 좋은 것이다. 

 

그런데 상대의 행동 몇 개를 보고 나의 도덕 기준으로 상대를 단정하는 것은 조심하고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대화를 할 때는 상대의 행동을 이야기하고 그 행동에 대해 부탁을 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는 이야기다. “당신은 말이 많은 사람이야. 고쳐!”가 아니라 “나하고 이야기할 때 결론을 먼저 이야기해 주면 좋겠어”라고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choyho@aj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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