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은숙 시인 / 메밀꽃 천서리 막국수 대표 ©화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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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수
허리가 굽은 노인이
식당 구석진 자리에 앉아
국수 한 그릇을 시킨다.
네 명의 자리에 세 명을 비워두는 식사
아마도 매 끼니를 빈자리들과의
합석이었을 것 같다.
잘 뭉쳐져야 여러 가닥으로 나뉠 수 있는 국수,
수백 번의 겹이 한 뭉치 속에 모이는 일,
뜨겁게 끓인 다음에 다시 찬물에 식혀야 질겨지는 음식,
그 부피를 많이 불리는 음식은 힘이 없다지만,
그래서 여럿이 먹어도 한 가지 소리를 내는 국수.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는 저 노인의 슬하는
이남 삼녀의 망종(亡種)
꽃핀 곳 없는 행색이지만
한 때는 다복했었을 것이다.
잇몸으로 끊어도 잘 끊어지는 빗줄기 같은 국수,
똬리를 튼 국수를
젓가락으로 쿡 찔러 풀어 헤친다
치아도 없는 노인이 먹는데
후루룩, 비 내리는 소리가 난다
비 오는 날 마루에서 들리던 엄마의 청승같이
뚝뚝 끊던 빗소리,
맑은 물에 헹군 국수발 같은 주름이
입 안에 가득 고인 빗소리에
바람이 흩날리며 든다.
늦은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구석진 자리로 허리가 굽은 노인이 찾아들었다. 햇빛을 쪼이려는 듯 창가에 앉아 국수를 시키던 노인, 자식들이 찾아오지 않는 일은 이미 오래 되었다. 밤꽃이 피던 날, 문득 구석진 자리를 보니 텅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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