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 기고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시로 읽는 화성 1]15포인트 고딕체로 씌어진 시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3/06/05 [09:36]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 휘 민 시인/ 화성작가회의 사무국장  © 화성신문

 화성시 인구가 98만명을 넘어섰다. 2001년 화성시로 승격할 때 21만명이었으니 20년 남짓한 기간에 거의 다섯 배가 늘어난 셈이다. 이 같은 추세라면 인구 100만명도 멀지 않은 일 같다. 그 변화의 중심에 동탄 신도시가 있다. 2007년부터 입주를 시작한 동탄 신도시는 화성시의 인구 증가를 견인한 주역이다. 동탄1, 2기 신도시의 인구가 39만명이 넘는다고 하니 그 위세를 짐작할 만하다. 

 

그렇지만 신도시 개발은 필연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야기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개발의 수혜자는 대부분 자본을 가진 젠트리(gentry: 지주계급 또는 신사계급)들이다. 그 과정에서 가난한 원주민들은 갑자기 치솟은 주거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정든 마을을 떠나게 된다. 이제는 고전이 된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나오는 1970년대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일이다. 화성을 ‘젊은 도시’로 각인시킨 동탄 신도시 또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정든 고향을 떠나며 손때 묻은 가재도구들을 버리고 산 설고 물 설은 곳을 우리는 각자 살 곳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중략)/ 큰 고목을 옮기려면 잔가지나 뿌리를 잘라 새로운 곳에 심을 때 그 나무는 한동안 고생을 합니다 그곳에 뿌리내리기 위한 몸부림이듯 우리 고향 땅은 폐허가 되었습니다 마치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곳처럼

/ 맞대면한 이웃이 복면 벗은 술의 처연한 얼굴인 듯/ 15포인트 고딕체로 투박하게 출력한 나머지 사연들 뒤집고 또 뒤집히는 동안/ 체념 급한 사람들 자리에서 빠져나가고/ 듬성듬성 남은 이들/ 여전히 포클레인에 철거되다 남은 가가호호 폐가들처럼/ 내부를 온통 털리고 앉아 떠든다.

 

홍신선, 「돌모루 마지막 이장의 편지」 중에서

 

 

화성 출신의 시인 홍신선의 「돌모루 마지막 이장의 편지」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서정시의 미학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젠트리피케이션이 낳은 비극을 현실감 있게 형상화한 이 작품에는 두 개의 주석이 달려 있다. 하나는 “돌모루는 화성 동탄 신도시 지구의 옛 마을 이름이고, 2002년 말 전 주민이 가산 일체를 수용당하고 강제 이주를 했다”는 문장이고, 다른 하나는 고딕체로 씌어진 부분이 돌모루 “이장의 편지에서 가져온 문장”이라는 설명이다. 

 

‘돌모루’에 대한 소개 글에서 시인은 건조한 문체로 동탄 신도시 개발로 원주민들이 ‘강제 이주’ 당했다는 사실을 밝힌다. 때로 한 줄의 팩트는 시보다 더 시적이다. 고딕체로 인용한 돌모루 이장의 편지는 하루아침에 고향을 잃어버린 원주민의 설움과 울분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들은 마지막 마을 대동회를 끝내고 쓰린 마음을 달래려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고 있다. 시인은 그들을 ‘포클레인에 철거되다 남은 가가호호 폐가들처럼 내부를 온통 털린 사람들’로 묘사한다. 

 

여기에 더하여 돌모루 이장은 마지막 편지에서 고향 마을을 지키던 나무와 폐허가 된 고향 땅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낸다. 그의 편지를 읽다 보면 미국의 서부 개척 시절 땅을 팔라는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의 요청에 시애틀 대추장이 했다는 발언이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팔 수 있는가? …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대들에게 팔 수 있다는 말인가? …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이다.” 

 

때로 진심을 꾹꾹 눌러 담은 문장은 시보다 더 진실하고 아름답다. 화성이 특례시가 된다 해도 돌모루 마지막 이장이 전하는 ‘15포인트 고딕체’에 담긴 진심은 잊히지 않길 바란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화성신문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인기기사목록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