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 기고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시로 읽는 화성 5]이 가을, 용주사에 가고 싶다- 조지훈의 시「승무」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3/10/16 [08:53]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 휘민 시인/ 화성작가회의 사무국장     ©화성신문

지금으로부터 85년 전, 아마도 이맘때쯤이었을 것이다. 들판에 노란 국화가 피어나고 용주사의 은행나무들이 노을빛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하던 무렵이었을 것이다. 평소 승무에 관심이 많았던 조선의 한 청년은 종로 어디쯤을 거닐다가 용주사에 큰 재(齋)가 들어 승무를 공연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승무라는 말에 청년의 가슴은 두방망이질을 해댔고, 청년은 그 길로 용주사로 내려갔다. 청년의 나이는 열아홉, 이름은 조지훈이었다. 그날 조지훈이 용주사를 방문하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 한국어로 창작된 가장 아름다운 작품 중 하나인 「승무」는 탄생하지 않았을까. 아니, 더 늦게 씌어졌을까.

 

승무는 한국무용 특유의 정중동(靜中動)의 미학을 가장 잘 표현한 춤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일찍이 이 춤에 매료된 조지훈은 승무를 꼭 시화(詩化)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나 이 결심이 아름다운 결실로 이어지기까지는 남모를 고난이 있었다. 조지훈의 고백(‘시의 원리’, 산호장, 1956)에 따르면 「승무」는 구상한 지 열한 달, 집필한 지 일곱 달 만에 세상에 나오게 된다.

 

보일 듯 말 듯 얼굴을 가린 흰 고깔, 남색 치마에 흰 저고리, 길게 늘어진 장삼과 어깨에 둘러멘 붉은색 가사. 대풍류 반주에 맞춰 일곱 번 달라지는 춤사위, 그리고 모든 번뇌를 내려놓고 힘차게 두드리는 법고의 장단까지…. 조지훈은 승무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재가 끝난 뒤에도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조지훈, 「승무」 전문

 

다음날 조지훈은 ‘뜻 모를 선율’을 안고 서울로 돌아온다. 그러나 이듬해 늦은 봄까지 붓을 들 수 없었다. 그러다가 1939년 여름, 김은호의 「승무도」를 보고 난 뒤에야 잡히지 않던 시의 윤곽을 붙들게 된다. 

 

1938년 가을, 조지훈이 용주사에서 보았던 것은 리듬으로 재탄생한 미의 얼굴이었을 것이다. 춤사위가 전하는 리듬은 그에게 잊을 수 없는 이미지를 각인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대상에 대한 생생한 묘사만으로는 시가 되지 않았다. 김은호의 「승무도」에서 인간의 애욕과 비애, 나아가 번뇌조차 승화시키는 리듬의 심연을 응시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사랑하는 「승무」는 지금과 다른 모습이었을지 모른다. 가을이다. 그날 조지훈이 밤늦게까지 넋을 잃고 서 있던 용주사 감나무 아래 서 보고 싶은, 그런 가을이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화성신문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인기기사목록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