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 칼럼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시로 읽는 화성 10] 1919년 4월 15일 제암리를 기억하다- 손택수의 「꽃의 운동」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4/04/08 [09:18]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 휘민 시인/ 화성작가회의 사무국장     ©화성신문

4월이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앞다투어 봄꽃들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계절이다. 노란 개나리꽃의 명랑함, 새하얀 목련꽃의 순결함, 연분홍 벚꽃들의 화사함, 그리고 다양한 색깔의 튤립들이 뿜어내는 다정함까지……. 메마른 나뭇가지에서, 마른 땅에서, 어쩜 저리 어여쁜 꽃들이 피어날까 하고 생각하면 꽃송이 하나하나가 참 기특하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가 참 귀하고 애틋하다. 마치 조물주가 실수로 물감통을 엎지른 듯 온 세상에 흘러넘치는 색깔들이 곱기만 하다. 하지만 T. S. 엘리엇이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했듯이 우리에게 4월은 꽃잎처럼 쓰러져간 이들의 희생을 떠올리게 하는 잔인한 달이기도 하다. 가깝게는 2014년 4월이, 멀게는 1960년 4월과 1919년 4월이 그러하다.

 

 

꽃은 운동이다 가만히 있을 때조차도 꽃에만 머물 수 없는 빛깔이 넘쳐 꽃 둘레 바깥으로 새어 나온다 그것이 꽃빛이다

 

어쩌면 꽃 저도 주체할 수 없는 뿌리를 쥔 대지의 숨결이 꽃을 문으로 들고나는 것이리라

 

 

해마다 봄이면 꽃을 바친다 꽃처럼 쓰러져간 사람들이 꽃으로 환생을 하는 것이다 꽃으로 만세를 불러야 할까 독립을 외쳐야 할까

 

망국의 비애가 꽃에게도 있다면 그처럼 슬픈 일도 없겠지

 

제암리에는 제암리에만 있는 방언이 있었다고 한다 옆 마을과는 다른 울림의 말들이 백 년 전 만세를 부르다 무참히 쓰러져갔다고,

 

색의 동력학은 그런 것, 햇살에 반응하는 멍울들의 화답과 시차를 충분히 존중하는 것

 

해마다 봄날은 와서 묻는다 왜 꽃을 밟는 것이 사람을 밟는 일인지, 왜 사람을 밟는 것이 꽃을 밟는 일인지

 

저마다의 꽃빛으로 운동하는 꽃다발을 바치며, 여전히 오고 있는 빛을 향하여

 

손택수, ‘꽃의 운동 – 제암리’ 전문

 

 

손택수 시인의 ‘꽃의 운동’은 꽃이 지닌 운동성을 제암리 독립운동과 나란히 두고 제암리에서 죽임을 당한 이들의 무고한 희생을 기리고 있는 작품이다. 그래서 시인은 “해마다 봄이면 꽃을 바친다 꽃처럼 쓰러져간 사람들이 꽃으로 환생을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아름답게만 보이던 봄꽃들이 제암리에서 희생된 선조들의 환생이고 숨결이라니 자못 숭엄해진다. 

 

화성은 대한민국의 3대 독립운동 발상지 중 하나였고, 화성의 독립운동은 치열하다 못해 절박한 사투의 현장이었다. 그 정점에 1919년 4월 15일 제암리 참살이 자리한다. 그날 일본군은 제암교회에 마을의 남자들 23명을 모이게 한 뒤 총을 난사하고 불을 질렀다. 그것도 모자라 이웃 마을 고주리로 이동해 민간인 6명을 학살하고 시신을 방화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제암리 참살은 전시가 아닌 시기에 벌어진, 세계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극악무도한 민간인 학살 사건이었다. 잊지 말아야겠다. 오늘의 이 찬란한 봄빛이 105년 전 그날의 참살에 빚지고 있음을. 기억해야겠다. 1919년 4월 15일, 그날의 절규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화성신문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인기기사목록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