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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읽는 세상 11] 풍선인형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4/04/15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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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비담시인. 한국작가회의 화성시지부     ©화성신문

벚꽃이 저토록 환하게 뭉텅뭉텅 피어오르더니 속수무책 화르르 지는 사월이다. 속수무책 지는 사월엔 세월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삶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잊지 않겠다고 확언하고 약속하며 10년을 보냈다. 

 

세월호 참사 직후 언어도단의 절벽에 막혀 실어증을 앓다가 한참을 지나서야 겨우겨우 미완결 문장으로 떠듬거리던 그때를 불러낸다. 약속을 잊지 않기 위해. 세월호 이야기가 이야기로만 소비되지 않기 위해.

 

 

아이의 일기장이 물속에서 멎은 밤 / 물이 사방에서 잡아당겨 부둥켜안은 몸들이 흩어지려 하는데 / 어떤 징후를 숨기고 있는 게 틀림없는데 // 흐르는 팔과 다리 바다장어는 머리칼을 물고 늘어지는데 / 아무것도 안 보이는 물속이 차올라 / 일어서려는데 핏물이 빠져 고꾸라지는 피부들 / 둥둥 뜨는데 / 모두가 눈을 번히 뜨고 지켜봤는데 // 살지도 죽지도 못한 엄마와 아빠의 아침들은 제정신이 들었다나갔다 / 헤매고다니면서 아무렇게나 날짜들을 던져대면서 // 마음이 바뀐 약속들은 방위표를 보여주지 않아서 / 마지막 몸이 오지 않았는데 부러지는 천지사방 // 서로 살이 닿지 못한 채 창자를 끌어올리며 부르는 이름들이 / 손바닥으로땅바닥을내리치면서억장이무너지면서사방허공이용역의방패처럼다막아서어떤방향을뚫어야할지도무지몰라서 // 시간의 모서리에 얼어붙어 아무리해도 뜯어지지 않는 발바닥 / 첨벙첨벙 들어가 흩어지는 몸들을 건져오지 못했는데 // 어쩌질 못해 제 손으로 제 발을 뽑아 두 팔을 번쩍 들어 / 세상의 바깥으로 던져버리고 싶은 죄 많은 에미애비 몸뚱이 / 멀리 던져도 코앞에 되떨어지는 형벌 // 풍선을 들고 소풍가는 날 / 물에 퉁퉁 불어 살을 만질 수 없게 된 열여덟 살 아이와 / 눈이 뭉그러진 엄마와 아빠가…

 

-전비담 시 ‘풍선인형’ 전문.

 

 

 

세월호에 관한 말이라면 도저히 종결어미와 마침표로 완결된 문장을 만들 수 없어서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고작 말문일 뿐인 말을 옹알이처럼 열고 어찌할 수도 없었다. 시로 비명을 토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세월호에 관해서는 그 외의 방법을 도무지 알지 못했다.

 

주유소나 점포의 홍보 행사에 등장하는 풍선인형은 자본주의 이벤트의 상징물이다. 땅바닥에 발이 붙들린 채 송풍구의 방향에 따라 사방팔방으로 만세를 부르다가 고꾸라지고, 다시 튀어오르다가 허리꺾기를 거듭하며 자본주의 축제를 구가하는 그 현란한 몸짓을 보고 있으면 축제의 즐거움보다는 몸속에 비통이 차오른다. 저 인형의 몸속도 나와 같을 것이다.

 

아무리 팔을 뻗고 하늘을 향해 뛰어오르려 해도 막아서는 허공의 벽에 부딪혀서 고꾸라지기를 거듭하는 관절꺾기 슬픈 춤… 거대한 자본의 시스템 안에서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벗어날 수 없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광란의 축제에 동원되고 있는 우리의 참담한 도구적 현실이다. 

 

자본 시스템의 총체적 결함과 부패의 결과로 일어난 세월호 참사. 백주 대낮에 멀쩡한 생목숨들을 수장시켜놓고 마치 이 세상에서 사람의 목숨이 어떻게 사라져갈 수 있는지 빠짐없이 보여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시간을 세며 차근차근 가라앉혀버리고 만 세월호를 발을 동동 구르며 속수무책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그… 

 

'야만'이라는 이름으로도 성에 차지 않아 사전을 아무리 뒤져봐도 이름 붙일 수 있는 단어를 도무지 찾아낼 수 없었던, 그 기괴한 일이 벌어진 2014년 4월 16일을, 나는 주유소 앞이나 신장개업 할인마트 앞에서 싫어도 어쩔 수 없이 자꾸만 마주친다. 풍선처럼 즐겁게 들떠서 소풍을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열여덟 살 아이들을…

 

 

 

※이 글의 둘째 단락부터 세월호 3주기 추모시집 ‘꽃으로 돌아오라(2017.4.16. 푸른사상 간행)’에 수록한 글을 수정 보완하여 게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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