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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화성 3] 능청으로 새로 쓴 원효와 당항성 이야기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3/07/3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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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민 시인/ 화성작가회의 사무국장     ©화성신

신라 천 년의 찬란한 문화는 불교에 힘입은 바 크다. 법흥왕은 죽음도 불사한 젊은 관리 이차돈의 순교 덕분에 불교를 공인할 명분을 얻었다. 고구려보다 155년 늦은 527년이었다. 이후 법흥왕은 화랑을 중심으로 젊은 세력을 키우며 고대국가의 기틀을 마련해갔다. 이차돈이 신라 불교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 인물이라면, 원효와 의상은 명실상부한 신라 불교의 두 기둥이었다. 나이는 원효가 의상보다 여덟 살 많았으나 둘은 막역한 도반이었다. 그들은 생전에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오른 적이 있는데, 두 번째 여정은 화성과도 인연이 깊다. 참고로 650년에 떠난 첫 번째 시도는 실패했다. 육로로 들어가려다 고구려 땅에서 첩자로 오인 받아 붙잡혔기 때문이다. 661년 당항성을 통해 바닷길로 들어가고자 했던 두 번째 시도는 절반만 성공했다. 의상은 떠났고 해골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은 원효는 남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서는 원효와 해골바가지 이야기를 기록하지 않았다. 그 비어 있는 틈새가 바로 시인의 상상력이 드나드는 통로다.

 

당나라 유학길에 오른 의상과 원효가 당항성으로 길을 갈 적에 원효는 이미 공주를 마음에 품고 있었는지 몰라 전전긍긍하다 의상에게 털어놓았는지 몰라 의상이 술을 한 말 받아 와서는 어이 원효 이거 묵고 이져뿌라 대장부가 큰길 갈라카모 여자는 이져야 하는기라 그렇게 등을 두들기며 권커니 자커니 원효는 더운 피를 식히며 마셨는지 몰라 술에 취해 그리움에 취해 쓰러져 잠들었는지 몰라 일어나니 목이 탔는지 몰라 목보다 가슴이 더 탔는지 몰라 해골바가지 속에서 찰랑이는 공주와 잠든 의상을 번갈아 봤는지 몰라 의상을 툭툭 건드리며 기척을 보이자 들입다 마셨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의상을 보며 의상아 씨팔 불심이 뭐 대단한기가 사랑하는 마음 그거 아이가 내 한 여자도 몬 사랑하는데 우째 만인에게 자비를 베풀끼고 내 몬 간다 내 돌아갈끼다 의상은 해골바가지와 원효를 번갈아 보다 문디 자슥 가삐라 꼴도 보기 실타 원효를 보내줬는지 몰라 아무렴 모르지 정말 모르는 얘기지 - 박찬세, 「연꽃잠」 전문.

 

원효의 일화를 익살스럽게 풀어낸 이 작품에서 시인은 정인을 두고 신라를 떠나는 원효의 흔들리는 마음을 재구성했다. 서라벌을 떠난 지 얼마나 지났을까. 그들은 당나라행 배편을 구하기 위해 떠돌다 당항성에서 하루를 묵는다. 그날 밤, 원효가 요석공주를 마음에 품은 이야기를 의상에게 털어놓고, “의상이 술을 한 말 받아 와서는 이거 묵고 이져뿌라”며 원효의 마음을 다독인다. 그렇게 ‘술에 취해 그리움에 취해 쓰러져 잠들었’던 원효가 한밤중에 깨어난다. 그리고 ‘목보다 가슴이 더’ 타는 심정으로 ‘해골바가지 속에서 찰랑이는 공주와 잠든 의상을 번갈아’ 바라본다. 세속의 길이냐 구도의 길이냐, 그 갈림길에서 갈등하는 원효의 인간적 고뇌를 시인은 클로즈업한다. 그러다가 “불심이 뭐 대단한기가 사랑하는 마음 그거 아이가”라며 원효의 깨달음을 부각시킨다. 시인이 경상도 사투리로 되살려 낸 그날의 풍경이 너무나 살가워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이야기시의 미학을 잘 살린 화법과 시상 전개다.

 

이 작품에는 세 개의 시간이 겹쳐 흐른다. 그 시간은 따로 존재하는 듯하지만 이야기라는 공통분모로 통합된다. 인간은 역사를 남기고 작가는 역사의 행간을 상상력으로 채워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한다. 그래서 이야기꾼(내레이터)을 자처한 시인은 말한다. ‘~~했는지 몰라.’ 무엇도 단정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를 들려준 뒤 “아무렴 모르지 정말 모르는 얘기지”라며 시치미를 뚝 뗀다. 대단한 능청이다. 화성을 노래한 시 중에 이보다 더 재밌는 작품을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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