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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김명철 시인의 현실과 상상의 교차로]
아기가 우는 이유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4/04/26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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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철 한국작가회의 화성지부장     ©화성신문

아기는 운다. 아기는 우는 법이다. 아기가 울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다. 봄에 태어나는 아기가 울면 진달래도 울고 목련꽃도 울고 영산홍도 운다. 어린 토끼도 새끼 고양이도 따라서 운다. 공갈 젖꼭지도 아기 입에서 쏙 빠져나와 운다. 

 

얼마 전에 아기가 우는 게 시끄럽다고 젊은 부부가 아기를 엎어 놓았다고 한다. 울음이 막힌 아기는 숨을 쉴 수 없었다고 한다. 아기는 다시 하늘나라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아기를 만나 함께 울어주던 집 안의 아기용품들과 눈을 맞추었던 불빛들과 사방의 벽들이 더욱 큰 소리로 엉엉 울었으리라. 나도 울었다. 

 

언젠가 어떤 유신론자가 신(神)은 아마 100차원쯤 될 것이라는 얘기를 농담처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아기들마다 어느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갓 태어난 아기는 대략 96일 동안 운다고 한다. 아기는 태어나서 100일쯤 지나면 울음이 많이 줄어든다는 ‘엄마들’의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이런 상상이 가능할 것 같다. 아기는 신(神)이 아니니 태어나기 전 하늘나라에서 99차원 정도의 존재였을 것 같다. 그렇다면 아기가 하늘나라에서 3차원인 이 땅으로까지 오려면 99차원에서 96차원을 내려와야 한다. 그런데 3차원과 4차원의 차이를 생각해 보자.

 

 어마어마하지 않은가. 우리는 4차원의 세계가 이러저러할 것이라고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3차원에 있는 우리의 발바닥은 4차원으로 오르는 까마득한 사다리를 밟을 수조차 없다. 5차원은 아예 엉터리 상상조차도 불가하다. 한 차원의 차이라도 그 사이에는 엄청난 낭떠러지 같은 게 가로놓여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아기는 99차원에서 우리에게 오기 위해 하루를 울어 한 차원씩 내려오는 셈이다. 막힘없는 공간과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시간에 익숙했던 아기는 슬플 것이다. 맑고 투명한 세계에서 점점 탁해지는 차원으로 내려올 때마다 아기는 목이 멜 것이다. 깨질 듯 머리가 아프고 미어질 듯 가슴이 답답하고 후빌 듯 배가 아플 것이다. 아기가 어찌 울지 않을 수 있겠는가. 

 

소아과 의사들은 아기가 우는 이유를 ‘성장통’이라는 이름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다. 아기가 한 번씩 울 때마다 성장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 세게, 더 크게, 더 많이 우는 아기는 그렇지 않은 아기보다 더 세게, 더 크게, 더 많이 성장한다는 말인가. 의사들이 그렇다면 그쪽으로 문외한인 나로서는 반박할 도리가 없겠지만. 

 

그러나 시인으로서 나는 아기의 발바닥을 한번 보라고 권해보고 싶다. 통통한 손이 아니라 발바닥을 먼저 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웬만한 사람이라면 아기의 발바닥에 남아있는 고차원의 세계를 조금이라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아기는 그 발바닥으로 여기 이곳 3차원까지 내려오는 것이다. 우리 아기가 다른 아기보다 더 많이 운다고 속상해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화를 내서는 절대 안 된다. 다른 아기들보다 더 많이 우는 우리 아기는 그만큼 맑고 투명하고 순수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 해서 적게 우는 아기가 덜 순수하다는 것은 아니다. 적게 우는 아기는 적게 우는 만큼 또 나름대로의 큰 뜻이 있을 것이다.

 

우는 아기를 위로하고 다독이며 우리의 발뒤꿈치와 아기의 발뒤꿈치를 비교해 보라. 눈으로만이 아니라 손으로, 이마로 만져보라. 입술로 만져보라. 그러면 우리는 눈곱만큼의 의심도 없이 아기의 숭배자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곧 그 발바닥 속으로 훅 빨려 들어갈 것이다. 잘 하면 거기로 빨려 들어가 ‘나’가 해체되는 무아지경에 빠져들 수도 있을 것이다. 깊고 얕음이 해체되고 높고 낮음이 해체되는 체험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말 어쩌면, 정신도 육체도 미움도 그리고 사랑까지도 해체되는 황홀경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아, ‘나’가 없을 수 있는 차원이라니!

 

아기는 애를 태우며 울고 때때로 폭풍처럼 우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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