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같이 줄을 서서 바게트베이커리 갓 구운 빵을 사왔다. 빵을 접시에 올려놓고 기도를 한다. 발랄한 원피스를 입은 아가씨들이 바닷가 풀밭 피크닉 바구니에서 긴 빵을 꺼내는 인상파 그림 앞이다. 접시의 빵이 아침햇살에 빛났고 지난 밤 야간근무조 스무 살 아가씨의 손을 빵반죽기가 물고 들어갔다는 뉴스가 티비에 나온다. 기계가 인간의 손 앞에서 멈출 줄을 모르다니, 잠깐 생각하다 모은 두 손을 멈출 줄 모르고 치켜세운다. 주여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과 저희에게 강복하소서. 순결한 빵의 속살을 뜯어 갓 우린 잉글리시티샵 얼그레이에 적시면 갓 스물 아가씨의 살과 뼈를 갈아 넣은 붉은 강복이 아침뉴스와 함께 흥건해진다. 지난번 제빵기사들에게 **노총 탈퇴를 종용하여 문제가 된 회사입니다. 아가씨의 손은 죽은 뒤에 손이 아니라 기계였음이 드러났습니다. 고장 난 기계는 흰 천으로 덮어 밀쳐 두고 다른 기계들을 투입하여 빵 반죽 작업을 계속하였습니다. 신선한 빵을 신성한 아침식탁 기도의 손에 올리려고 졸음에 겨운 야근의 손은 붉은 잠에 빠져죽었다. 아직 다 오지 않은 아가씨의 살과 뼈들이 식탁의 접시에 수북했고 모아 올린 기도마다 아가씨의 잘린 손이 은혜로이 강복하는 아침이다. 호주머니에 넣어도 자꾸만 손이 붉었다. -전비담 시 ⸢빵의 손⸥(‘시인수첩’ 20203년 봄호 게재) 전문.
지난해 10월, 제빵기사들에게 민주노총 탈퇴를 종용한 SPC그룹 계열사 SPL의 평택 제빵공장에서 스무 살 아가씨가 소스 교반기에 끼어 죽었다는 뉴스를 보고 쓴 시다. 하필이면 동네 파리바게뜨(SPC계열)에서 사온 빵을 앞에 놓고 막 기도할 때였다. 챙이 넓은 모자에 허리를 잘록 동여맨 원피스 차림의 아가씨가 양산을 들고 피크닉하는 그림이 걸린 벽 아래 식탁에서였다. 그 순간 빵공장 아가씨와 피크닉 아가씨의 기막힌 대비를 보았다.
스무 살 아가씨의 살과 뼈를 갈아 넣은 경건한 아침, 갓 구워 나온 빵에 우리 주 그리스도의 것인지 아가씨의 것인지 은혜로운 ‘강복’이 흥건해졌다 우리는 덜 깬 아침의 졸음에 겨워 커피에 적시려던 빵을 붉은 희생 제사의 ‘포도주’에 빠트렸다. 이 회사의 노동자들은 밤샘 노동으로 주의력이 떨어져 아침 무렵 사고가 빈발하고, 일손 부족에 쉼 없는 노동으로 ‘화상에도 붕대 감고 계속 일한다’고 한다. 잠을 자지 못하면 한꺼번에 파괴되고 조금씩 회복하다가도 다시 한꺼번에 무너져 내린다. 증상도 모른 채.
지난 8일 또 SPC그룹 샤니 성남 제빵공장에서 기계 끼임 사고가 일어났고 50대 여성 노동자가 사망했다. 20대 여성 노동자의 사망 뉴스를 들은 지 꼭 10개월 만이다. 10개월 전이나 지금이나 죽음의 원인이 안전관리 소홀이다. 숨진 노동자는 반죽이 담긴 원형 스테인리스통을 옮기다 상반신이 끼어 변을 당했다. 반죽 기계엔 ‘비상 멈춤 스위치’만 있을 뿐, 위험 감지 자동멈춤 장치는 없었다고 한다. 동료 노동자의 기계 작동 실수가 사고 원인이라고 하는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2‧3중의 보호막이 마땅히 설치돼 있었어야 했다.
지난해 사고 후 허영인 SPC 회장은 “뼈를 깎는 노력을 하겠다”며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회사는 거액을 들여 “연동장치(인터록), 안전 난간, 안전망, 안전 덮개 등을 추가로 설치하고 위험 요소를 제거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도 10개월 사이 안전사고가 5건이나 더 일어났다. 다 사망 사고는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회사가 노동환경을 방치했다고밖에 이해할 수 없다. 안전관리 강화에 1,000억 원 투입을 공언한 회사의 약속은 늘 그래왔듯 면피용일 뿐이었다. 노동자가 다치고 죽어가면서 만든 빵을 계속 먹어야 할까. 뻔한 말이지만 실은 우리 대부분은 노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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