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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홍난파 다시보기(2) “참다운 예술가는 인격을 지켜라”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3/09/18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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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도성 홍난파합창단원 / 시민기자.     ©화성신문

우리나라 최초의 바이올리니스트이며 천재음악가인 홍난파가 음악콩쿠르 심사를 본다면 무엇을 강조할까? 

 

필자는 매우 궁금하다. 다행히 당시 신문에는 홍난파가 음악콩쿠르에서 심사를 보았고 그가 말한 심사평 내용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음악콩쿠르 심사위원장 홍난파의 중요한 가르침은 예상과 달리 재능보다도 인격을 무척 강조한 것이었음은 의아했는데, 그가 콩쿠르 참가자에게 주었던 심사평 기록을 더듬어 보자.

 

홍난파는 1935년 9월 열린 1회 전 조선남녀음악현상경연대회에서 바이올린 부문 심사위원이면서 전체 대회 심사위원장이었다. 당시 신문에 의하면 “백 명의 입선자를 내는 것보다도 한 사람의 음악가를 얻으려는 것이 콩쿠르의 사명이요, 의도임을 깨달아주기를 바라는 바이다”라고 홍난파는 말했다. 이 콩쿠르에는 백여 명이 응시하였고 1,2차 예선을 통과한 14명이 결선에 진출하여 입상자 3명이 선발되었다. 이로써 우리나라에서도 음악콩쿠르의 시작이라는 첫 발자국을 남기었다. 그런데 홍난파는 콩쿠르에 참가한 모든 사람이 음악과 콩쿠르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가져 줄 것을 당부하였다. 그리고 그는 응시자 자신이 음악을 대하는 태도야말로 자신에게 내리는 가장 엄정한 심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왜냐하면 그는 음악콩쿠르가 자칫 등수와 결과만을 강조하는 대회를 위한 대회나 입상을 위한 일회성 대회로 전락할 것을 우려해 보내는 진정어린 충고였다. 

 

천분과 노력에 고상한 인격의 겸비를 강조한 점에 대해서....

 

홍난파는 1938년 9월 개최된 3회 음악콩쿠르에서도 심사위원 대표를 맡았는데 이 대회에서도 그의 가르침은 천재적 재능보다도 인격적인 노력이었다. 실제 음악콩쿠르 직전에 그가 신문에 기고한 글의 제목은 ‘참다운 예술가는 인격을 지켜라’였다. “음악예술이 인격을 떠나서는 그 존재 가치나 향훈을 발휘할 수 없음을 잊지 말아서 예선과 결선을 불문하고 철두철미 양심적 열연을 기대하는 바이요, 아직까지도 본 콩쿠르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인해 어떤 야심이나 투기적 태도로 응하는 이가 있다면 이런 이는 비록 결선까지 패스한다 하더라도 예술인으로서는 이미 낙선자요, 무 자격자임”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음악콩쿠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서 그는 다시 심사위원 대표로 신문에 ‘천분, 노력, 인격, 이 세 가지로 예술을 대성하라’라는 제목의 심사평을 기고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천분은 재능을 말하는 것이다. 이 글에서도 역시 그는 대 예술가는 천분과 노력을 겸비한 위에 또한 고상한 인격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강조했다. 당시 우리나라가 서양음악을 받아들였고 양적으로는 팽창되었으나 기본적인 예절조차 갖추지 못한 걸음마 상태였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처음 개최되는 전국대회인 음악콩쿠르에 참가하는 응시자들이 마치 개인의 영예 욕심을 채우거나 투기심으로 응시하려는 우려를 음악계의 선배로서 경계했던 것이다. 

 

이러한 홍난파의 교훈을 이어받은 한국의 서양음악은 우리가 놀라고 전 세계도 놀랄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음을 잘 알고 있다. 이달 화성신문이 주최하는 ‘화성시 동요대회’ 참가를 준비하는 미래의 꿈나무들도 홍난파 선생님이 80여년전 음악콩쿠르를 참가한 음악인에게 주었던 가르침을 결코 잊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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