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대표하는 음식, 김치. 그러나 이 김치를 세계인들의 식탁에 오르게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김치를 담그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것을 보관하면서 그때그때 꺼내 먹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특히나 국물이 넘치기라도 하면 낭패다. 그런데 이제는 세계 어디서나 쉽게 김치맛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김치맛이 나는 피자, 김치맛이 나는 치킨, 김치맛이 나는 감자튀김까지 즐길 수 있다. 심지어는 김치로 테킬라 칵테일을 맛볼 수도 있다. 음식에 뿌리는 ‘마법의 가루’ 김치 시즈닝이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서울시스터즈(회사명은 ㈜푸드컬쳐랩)에서 2020년 출시한 '김치 시즈닝(Kimchi Seasoning)'이 K-food의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입안을 얼얼하게 하는 김치맛 나는 이 양념 가루는 일본의 시치미, 베트남의 스리라차, 멕시코의 타코 파우더 등을 모두 제치고 아마존의 칠리파우더 카테고리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대학을 자퇴하고 필리핀에서 어학연수를 받던 안태양 씨는 파티가 있을 때 한국 음식을 만들어서 친구들에게 선보이곤 했다. 그때마다 친구들의 반응이 좋았다. 그런데 음식에 관련된 우리의 추억이나 삶을 이야기하면 그 음식에 대한 반응이 더 좋아진다는 것을 알았다. 음식은 단지 제품이 아니라 문화라는 사실을 깨우쳤다. 거기서 자신감을 얻은 안태양 씨는 떡볶이 장사를 시작했다.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만들어 팔면서 한국문화를 전파하려 시도했다. 어느 정도 인기를 얻으면서 그 장사는 중국인 사업가에게 넘기고 귀국하여 본격적으로 K-food 사업에 뛰어들었다.
떡볶이도 좋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 김치로 정면 승부를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김치를 세계시장에 내어놓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민 끝에 물류 문제, 보관 문제, 활용 문제를 모두 해결하려면 가루로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러면서 김치를 한국스토리만으로 팔 수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세계시장에서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려면 김치의 고유성은 유지하되, 철저하게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문화의 스토리를 몰라도 즐기는, 일회성이 아니라 일상성이 되는 K-food를 개발하고 싶었다.
안태양 씨는 무작정 미국으로 떠났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실제 미국 가정집을 일주일 단위로 살아보기로 했다. 각 가정에는 무슨 소스가 있는지 살펴보고 근처 월마트나 홀푸드마켓 등 대형 마트에서 장을 보고 음식을 조리해 먹으면서 그 나라의 식생활을 이해하려 했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미국뿐 아니라 일본·유럽 등도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그는 신맛에 주목하게 됐다. 외국 사람들이 먹는 각종 소스를 먹어보니 유독 신맛이 강했다. 왜 그럴까? 음식에서 신맛은 식욕을 돋우는 데에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한국인에게는 김치가 그 역할을 해주는 외국에서는 다른 소스가 그 일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김치의 시장성에 확신이 느껴졌다.
때마침 미국에서는 유산균 열풍이 일고 있었고 김치 유산균에 주목하고 있었다. 서양 사람들이 주식으로 하는 밀가루에는 글루텐이라는 성분이 있다.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면 복통이나 만성피로를 유발하는 글루텐을 분해하는 데 김치 유산균이 효과적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김치의 가치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홀푸드마켓에서 매년 나오는 리포트에도 김치 유산균이 늘 상위 10위 안에서 언급되고 있었다. 그래서 제품에 유산균을 많이 넣는다면 비싸도 소비자들이 구매할 것 같았다.
또 하나 음식에서 중요한 트렌드는 비건(채식주의)이었다. 김치는 기본적으로 채식 음식이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젓갈 말이다. 젓갈을 없애야 비건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젓갈을 없애면 고소한 맛도 사라지고 유산균도 달라진다. ‘식물성 유산균’을 찾아야 했다.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영남대 박용하 교수가 개발한 특허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박 교수는 10여 년 전에 이를 개발해서 특허를 얻어두고 있었으나 누구도 찾는 사람이 없어 본인도 관심을 끄고 있었던 그것이었다. 결국 박 교수의 도움을 얻어 완전 비건 김치를 만들고 드디어 비건 인증까지 받았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3년 만에 시장에 나온 김치 시즈닝. 안 대표는 포기해야 하나 싶은 순간도 많았다. 개인 스타트업에서 아무 수입 없이 3년을 기다린다는 것은 피 말리는 일이었다. 혹자는 안 대표의 뚝심이 성공 요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안 대표는 뚝심만으로 비즈니스 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한다. 뚝심이 아니라 살아있는 데이터가 생명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안 대표는 계속 고객들과 대화하고, 각종 보고서를 읽는다. 그리고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해 고객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실시간으로 들여다본다. 안 대표의 혁신은 데이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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