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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역사랑은 뿌리를 찾는 길이다
나주임 성후공(性厚公) 문중 임채덕(성후공 13代孫)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17/12/20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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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주임 성후공(性厚公) 문중 임채덕(성후공 13代孫)     © 화성신문

왜, 400여년 전 성후공 할아버지께서 능동 일원에 터를 잡으셨을까?

 

현재 내가 살고있는 화성 능동 일원에 둥지를 트신 분이 성후공(性厚公)(1608.01.10.~1648.10.01.)할아버지다. 휘는 돈(墩)이요, 자는 성후(性 厚)이다. 지금은 동탄을 중심으로 병점, 능동지역이 도시화가 이루어 졌지만, 내가 태어나 자란 이곳은 농업으로 생업을 하던 지역이었다. 

   

어릴적 가을걷이가 끝나면 할아버지, 아버지의 손을 잡고 구봉산 자락의 종중묘역을 찾아 시제를 지내던 기억이 선명하다. 

 

어느 덧 내 나이도 40대 중반이 되었다. 아버님께서 “너도 장년이 되었으니 이제 종중 일을 맡아 봐라” 말씀하셨다. 이를 계기로 나의 뿌리를 찾는것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자료에 의하면 1639년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환란극복에 기여한 공로로 환도후 공신으로서 인정되어 승차를 하신 것으로 보여지며, 그 시발점이 광교산 전투라고 여겨진다.

 

성후공 할아버지가 주로 수원근교에서 무관의 길을 걸으셨다 사료된다. 종내에는 정3품 어모장군(禦侮將軍) 품계인 훈련원정(訓練院正)으로 승격하셨으나, 공은 20여년간의 관직생활로 인한 누적된 과로로 재직 중 1648년 만 40세 불혹의 나이로 순직하시어 생전에 마련하여 놓으신 화성군 태장면 병점리 산216번지(독재울 앞산, 현 화성시 능동 숲속마을 신미주아파트 자리)에서 영면(永眠) 하셨는데 두 번의 천묘(遷墓)로 지금은 장안면 어은리에 모셔져 있다.

 

내 고향을 사랑한다는 것은 내 뿌리를 찾는 일이다. 이는 나와 내 가문의 정체성이요, 내 나라의 역사이기도 하다.

 

모처럼의 내 문중의 뿌리를 찾다보니 동탄 신도시의 위용만큼이나 내 정신적 깊이도 더해간다. 한해 한 해 나이들며 세상을 살피는 지혜를 얻기도 한다.

 

보람 있는 한해가 저물어 간다. 부모님과 조부모님 얼굴을 떠올려 보자. 거기에 너와나 우리 모습이 있지 않은가!

 

무술년(戊戌年) 한해를 힘차게 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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