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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선 칼럼 │ 예술과 도시 이야기]
볼 수 있는 것, 볼 수 없는 것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4/03/1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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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동선 소다미술관 관장     ©화성신문

흔히 미술관에 전시를 '보러' 간다고 한다. 전시의 관람은 예술 작품(박물관의 경우 유물)을 보여주는 것에 기반을 둔 시각 예술이다 보니 시각장애인에게는 제약이 따르기 마련이다. 

 

최근에 한국은 예술의 접근성 증진 차원에서 국공립 박물관·미술관 전시에 점자 패널이나 촉지도 등 여러 장치들을 마련하기 시작했지만, 한계는 여전하다. 그럼 시각장애인은 전시를 볼 수 없을까? 

 

소다미술관에서 준비 중인 장애인식개선을 위한 기획전시 <PALETTE:우리가 사는 세상>의 준비를 위해 집어 든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는 일본 논픽션 작가 아리오가 선천적 전맹(全盲)인 시라토리와 함께 2년 넘게 미술 전시를 다닌 경험을 기록한 책이다. 책을 읽는 동안 '볼 수 있는 것'에 대한 낯선 질문들을 하게 된다. 나 또한 시각장애인에게 전시를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생각에서 시작하여 '그럼 나는 무엇을 제대로 보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선입견을 깨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볼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주 단순화하면 두 단계로 진행된다. 물체가 빛을 받으면 특정 색을 반사하는데, 그 빛이 망막에 도달해 시세포를 자극하여 전기 신호로 대뇌에 전달된다. 이 첫 단계에서는 인간은 소위 무지개색의 세계인 가시광선 범위의 빛만 볼 수 있다.

 

 다음으로 대뇌로 전달된 방대한 시각 정보는 모두 처리되는 게 아니라 '선택적 주의'를 통해 취사선택한 정보를 기존에 가지고 있던 기억 정보에 끼워 맞춰 실제로 본다고 인지한다. 우주적 관점에서 우리 눈에 보이는 물질이 5%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뇌에서 한 번 더 '볼 수 있는 것'을 걸러내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보고 인지한다는 것은 물리학, 심리학 그리고 뇌과학에 더 깊은 이해가 있어야겠지만, 대충 계산해봐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좁은 범위에 있는 듯하다.

 

게다가 현대 미술은 여기에 더해 어떤 (보이는) 현상도 수많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는 속성을 가지고 현재 우리가 보고 인지하는 것에 대한 끝없는 도전을 한다. 즉 우리의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을 깨는 질문과 실험를 통해 보이지 않는 것, 인지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를 계속하라고 독려한다. 

 

전 세계 미술 애호가에게 가장 사랑받는 작가 중의 하나인 아니쉬 카푸어(인도 태생의 영국 작가 1954~)는 그가 다루는 재료의 특성과 표면 특수 처리를 통해 빛과 반사를 다루는 천재적인 작가이다. 눈으로 보기 위해 우리는 시선을 잠시라도 한 점에 고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의 작품은 그 자체를 어렵게 한다. 또한 그의 작품에 반영된 물체의 상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아 왔던(알고 있던) 이미지를 왜곡시켜 우리의 뇌가 인지하는 데 혼란을 만든다. 매일 보던 자신의 얼굴도 다르게 보여 낯설게 만들어 다시, 자세히, 적극적으로 보게 만든다. 

 

팔레스타인 출신 영국작가 모나 하툼 (1952~)의 작품 <이물질 foreign body>(1994)는 충격적인 경험을 통해 본다는 것을 새롭게 만든다. 작은 칸막이 공간 안, 전시장 바닥에 투사된 영상은 초소형 카메라로 작가 자신의 몸속을 이동시켜 촬영한 것으로, 작가의 초상화라 한다. 매우 흥미로운 관점이면서 동시에 묘한 불쾌감을 자아내는 작품일 수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여성의 몸과 관련된 사회적 개념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를 담고자 하였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여 보던 몸의 '볼 수 없는' 부분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을 본다는 것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 보면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의 저자는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평소에 사용하는 뇌의 취사선택 기능이 꺼지고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게 갑자기 보이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무엇을 보아왔을까?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의 경계는 우리가 만든 것일까? 예술은 늘 질문을 하게 만든다.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질문은 우리의 '볼 수 있는 것'의 경계를 흐려 더 넓게 더 깊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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