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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읽는 세상 8] 해마다 호명되는 투명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4/01/02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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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비담시인. 한국작가회의 화성시지부  © 화성신문

성탄절 아침, 하얗게 눈이 내렸다. 까치가 옥상의 티비 안테나 위에 앉아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까치는 멀리서부터 달려온 허공과 무슨 대화를 주고받는 것 같다. 한참을 그러더니 포르르 날아 옥상 눈밭에 첫발자국을 내고 창가로 내려와 부리로 성탄 아침의 창문을 두드린다. 까치는 안테나 위에서 하늘과 어떤 교신을 하고 메시지를 받아 물고 온 게 틀림없다. 까치가 노크하는 창문의 투명을 보며 우리 사회의 제도와 중심부에서 밀려나 그늘 속에서 없는 존재처럼 살고 있는 투명한 사람들을 생각한다. 

 

 

저녁의 붓질에 혀끝을 대면 아홉 번 구운 소금인형 맛이 난다/ 이름을 반납할 때가 왔다// 엎질러진 지상으로 내려간다/ 지나가는 인파 사이로 빈 삼다수물병을 휘저으며// 떨어져나가지 않기 위해 지레 떨어지는 발자국들/ 접질린 지상이 밀려드는 지하도 입구는 저녁의 가장 짙은 사태다/ 파기된 하루치 계약의 계단을 범하며/ 물병에 밀어넣은 이름이 따라와 비닐색 밀도의 그림을 완성할 것이다// 회수한 이름표의 명도는/ 몰려드는 호모사케르의 채도와 같다// 물병이 중얼거리는 물병의 채색은 인파에 닿지 못해/ 물색 방백傍白의 소리 공중에 긋는다// 무명을 호명하는 신문지사회면을 펼쳐놓으면/ 이름은 떠도는 물의 루머를 깔고 잠에 든다// 이제부터 여기는 깊이를 알 수 없어/ 아직도 당도해야 하는 심해// 물병이 휘두르는 붓질은/ 칠할수록 짙어지는 투명/ 부를수록 녹아 없어지는 호명// 밤마다 그림은 완성되지만/ 날마다 발견되지 않는다 

 

(전비담 시, 「빈 삼다수물병이 그리는 이름」 전문)

 

 

 

성탄 전야의 경건하고 간절한 대림의 전례를 올리고도 우리 사회의 저 공중에 무수히 솟아 있는 교회 첨탑에서 빛나는 별들은 여전히 내려오지 않고 있다. 가장 낮은 데에서 태어난 희망을 높디높은 데서 내려다보고만 있다. 성탄이 겹친 연말연시. 세모라고도 하는 이 시기. 해마다 어김없이 아기 예수의 희망이 태어나지만 해마다 세상의 구석구석에는 포탄이 떨어지고 애꿎은 아이들과 젊은이들과 시민들이 죽고 학대와 폭력이 일어나고 가난한 자들의 식탁은 텅 비어 있다. 차별과 억압 속에 굴종의 참담이 일상이 되고 무심하고 무자비하게 자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생활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안일하게 흘러가고 있다. 

 

그러다가 훈훈하고 따스함을 찾아 깃들고 싶어지는 세모의 시간에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언제부턴가 추운 구석에서 떨고 있는 존재들을 거명한다. 학대받는 아이들, 차별받는 노동자들, 해고자들, 여자들, 혼자 사는 늙은 사람, 혼자 사는 젊은 사람, 떠도는 난민들, 노숙자들, 끼닛거리가 없는 사람들, 병든 사람들... 

 

이들을 부르는 호명 행사는 세모의 통상적인 이벤트가 되었다. 그것이 정치적 제스처든 순정한 휴머니즘의 발로이든 해마다 아기 예수의 희망을 뽑아 들고 잊고 있었던 그들, 사회가 합심하여 제도의 바깥 후미진 곳으로 밀어낸 투명 존재들을 다시 호명하며 모금 냄비에 동전을 던지는 것이다. 

 

올해의 세모에도 어김없이 떠들썩하게 불러낸 이 투명의 이름들을 앞으로 어찌할 것인가. 일년내내 희망으로 고문하다가 지난해 혹은 지지난해처럼 결국은 넝마조각이 된 희망을 또 보여줄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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